〈전화의 역사〉
〈전화의 역사〉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4000원 언젠가 한 블로거가 그랬다. ‘강준만 읽기의 괴로움’이라고. 그는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를 ‘속도와 질량의 폭력’에 빗대어 말했는데, 분기에 한 권꼴로 신간을 내놓는 강 교수의 ‘초인적’ 집필 활동을 고려하면 그리 무례한 비유는 아니었다. 이번에 내놓은 책은 <전화의 역사>다. ‘한국 생활사’ 집필을 평생의 작업으로 구상중인 강 교수가 <축구는 한국이다>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입시전쟁 잔혹사> <어머니 수난사>에 이어 반년 만에 내놓은 문화(생활)사 시리즈다. 부제가 ‘전화로 읽는 한국 문화사’다. 강 교수가 전하는 한국 전화의 약전(略傳)이다. “애초 전화의 목적은 ‘소통’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넘어 정치·사회적 의미를 담지하고 있었다. 개화기에 소개된 근대문물로서 전화는 ‘근대화의 상징’이자 ‘특권’이었다. 그 세월이 가장 길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는 ‘오락’으로 변했고, 휴대전화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2000년대 들어서는 ‘종교’가 됐다. 이른바 ‘신흥종교’의 탄생이다.” 강 교수가 휴대전화를 ‘종교’의 지위까지 격상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가져온 주객전도 현상 때문이다.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사용자의 중독 현상을 낳으면서 숭배의 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강 교수는 말한다. “사람들이 휴대전화라는 신흥종교에 미치는 건 스스로 미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른바 ‘셀룰러 이코노미’라는 동력에 의해 촉진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전염효과 앞에서 홀로 저항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물어보자. 나는 내 휴대전화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강 교수는 휴대전화가 한국의 신흥종교가 된 이유를 일곱 가지로 꼽는다. 고독으로부터의 탈출 욕구,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욕구, 인맥사회에서의 생존술, 구별짓기 문화, 휴대전화 산업의 정치경제학 등이다. 흥미로운 점은 강 교수가 한국인의 전화 중독에 ‘초강력 1극구조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강력 1극구조 사회다. 역설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중심이나 상하계층 구조가 없는 네트워크 체제인 전화 커뮤니케이션을 한풀이하듯 저항적으로 즐긴다고 볼 수 있다. 전화는 억압적 구조와 질서에 적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탈출구가 될 수 있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동시대 사회상을 전화에 얽힌 한국인의 애환 속에 생생하게 녹여낸 강 교수의 글솜씨도 책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고종이 대비의 능에 전화를 놓아 ‘전화문상’을 한 일이며, 1903년 마포와 남대문 등에 최초의 공중전화가 가설됐을 당시 저속한 농담이나 말다툼을 단속하기 위해 전화기 옆을 관리가 지키고 있었던 일, 다이얼 전화가 등장한 1950년대 후반 전화 없는 사람들이 다방 전화를 매개로 연락을 하면서 다방이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지로 떠올랐던 사실 등 정보와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책장 곳곳에 잠복해 있다. 마치 투정하는 독자들을 향해 따져 묻는 것 같다. “강준만 읽기, 이래도 괴로워?”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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