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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양평화론 ‘큰 외침’ 동북아 연대로 부활하나

등록 2009-10-25 19:16

남북 민족주의 상징…각자 체제결집 ‘이용’
진보학계, 평화주의자 면모 현재화 시도중
근대 이후의 실존 인물 가운데 남북이 역사적으로 의미를 공유하는 인물은 거의 없다. 이 점에서 안중근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남북으로부터 공히 ‘애국의 상징’으로 숭앙받는 존재가 안중근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정통성을 항일유격 활동에서 찾았던 북한이나 산업화를 위해 강력한 결집의 매개가 필요했던 남한 모두에서 안중근은 정치적 균열을 봉합하고 사회의 잠재 역량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민족주의 아이콘으로 기능했다.

이런 이유로 안중근에 대한 학계와 사회의 관심은 남북한 모두 ‘일본에 대한 항쟁’과 그것의 정점인 ‘하얼빈 의거’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 점은 북한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공식적 안중근관을 표상하는 혁명가극의 제목이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인 사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1928년 창작한 것으로 돼있는 이 작품은 안중근의 항일활동과 애국심을 찬양하면서도 그 한계를 함께 부각시킨다.

“온몸을 바친 무장 독립 활동도, 겨레의 원수 이등박문을 격살한 것도 나라를 구하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짓밟히고 천대받는 우리 민족을 구원해 줄 영웅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라는 안중근의 독백이나 “열혈 애국 청년 안중근은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치었으나 조국을 구원할 옳은 길을 알지 못했고, 조국 광복의 새로운 여명이 밝아 올 날은 아직도 멀었었다”라는 화자의 논평이 대표적이다. 안중근 이후에 나타날 진정한 구국의 영웅이 김일성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런 공식 관점은 24일 보도된 북한 주간 <통일신보> 논평에서도 확인된다. 이 잡지는 안중근에 대해 “탁월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던 탓에 개인테러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고 끝끝내 한몸 바쳐서도 독립 염원을 이룰 수 없었던 민족의 풍운아”라고 규정했다.

남한에서 안중근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그가 옥중에서 썼다는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이 발굴된 1970년대 말 이후에야 본격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국가보훈처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같은 국가기관들이란 사실이다. 실제 1990년대 이후 안중근 연구물 가운데는 이들 기관이 펴낸 연구논문과 단행본이 압도적으로 많다. 연구 내용 또한 안중근의 ‘항일 활동’에 초점을 둔 경우가 대부분인데, <동양평화론>을 쓴 ‘평화주의자 안중근’을 다루더라도 “일본에 대한 항쟁이란 시각에서 안중근을 이해하려는 경향을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고 있다”는 게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진단이다.

최근 눈에 띄는 것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진보 학계의 ‘동아시아 담론’이나 북핵 6자회담 국면에서 마련된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상과 결합시켜 그 의미를 현재화하려는 시도들이다. 박명규 서울대 교수는 “안중근의 논리는 한·중·일 세 나라의 주권이 존중되는 속에서 동양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이는 21세기 남북한의 통일도 동북아의 평화와 연대라는 광범위한 흐름과 함께 가야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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