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오른쪽). 100년 전 두 사람의 비극적 만남을 한·일 두 나라는 ‘의거’와 ‘테러’라는 상극의 언어로 기억한다.
‘안중근과 동북아 평화’ 학술대회
‘평화주의자 안중근’은 낯설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 안중근이란 존재는, 조련도 안 된 경무장 의병부대로 최강의 일본 군대와 사투를 벌이고, 첩첩의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제국의 거물 정객을 향해 총탄을 날린, 타고난 무골(武骨)의 장부 이미지로 부호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도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한국에선 국권 침탈의 원흉을 척살한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일본에서 그는 ‘현대 정치의 아버지’를 살해한 조선의 편협한 정치 자객일 뿐이었다. 일국적 관점에 포획된 민족주의 역사인식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런 점에서 ‘평화주의자 안중근’에 주목한 남·북·중 3개국의 공동학술대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옥중집필 유고 통해 ‘동아시아 공동체’ 인식 재조명
‘원초적 민족주의’ 후광 걷고 세계주의자 면모 주목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와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중국 다롄(대련)대 한국학연구원 등이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25~26일 중국 다롄에서 함께 여는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안중근과 동북아 평화’. 한국에서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박명규 서울대 교수, 최원식 인하대 교수,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참석해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본 안중근과 동양평화론’ ‘동양평화론의 현재적 가치와 미래상’ 등의 논문을 발표한다. 북한과 중국 쪽 참가자들이 안중근과 ‘하얼빈 의거’에 대한 자국내 평가를 주로 다루는 데 반해, 한국 참가자들은 안중근이 옥중 집필한 미완성 유고 <동양평화론>에 나타난 평화주의적 신념과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맹아적 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동양평화론>은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이 항소권을 포기하는 대신 재판부로부터 집필 허락을 받아 옥중에서 쓴 미완성 논설로 서양세력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동양삼국의 단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한국의 독립이 필수적이란 주장을 담고 있다. 특히 동양평화의 구체적 실현 방법으로 한·중·일 3국 평화회의 개설과 은행 설립을 통한 공통화폐 발행, 공동의 군대 창설 등을 제안한 부분에 대해선 ‘100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선구적 통찰’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삼웅 전 관장은 ‘자유케 하는 폭력’이란 관점에서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안중근의 ‘거사’는 “동양평화를 유린한, 제국주의 침략자를 처단함으로써 국제평화를 유지하려는 평화운동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일각에서 (안중근을 두고) 암살자·테러리스트 운운하는 것은 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기인한다. 이토가 한국과 대륙을 침략하면서 ‘동양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들었는데, 이는 ‘속박하는 폭력’이요, 안중근이 이토를 처단한 것은 ‘자유케 하는 폭력’이었다.”
왼쪽부터 김삼웅, 박명규, 김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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