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워킹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나일등 옮김/후마니타스·1만9000원 “그들에게 날아오는 청구서에는 언제나 ‘독촉’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워킹푸어(working poor),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이다. 빌딩의 야간 경비원으로, 청소부로, 세차원으로, 극장의 팝콘 판매원으로 미국인의 일상 속에 있지만 아무도 이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식으로 표현하자면 ‘셈해지지 않는 자들’이다. 미국에 어쩌면 알카에다, 북한 핵보다 위협적인 존재가 이들인지 모른다. 그 존재 자체로 “일하면 부자 된다”는 미국식 신화의 허구성을 여지없이 폭로하기 때문이다. 책을 쓴 데이비드 케이 쉬플러는 1966년부터 22년 동안 <뉴욕 타임스>에 근무하며 중동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린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레바논 사태를 현지 취재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심층 르포집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런 그가 워싱턴의 흑인 거주구와 뉴햄프셔의 백인 마을, 시카고의 공장과 직업훈련소, 로스앤젤레스의 공영주택단지, 캘리포니아의 스웨트숍(노동착취 공장)을 누비며 워킹푸어들과 만나기 시작한 건 미국의 ‘신경제’ 거품이 정점에 달했던 1997년이었다. 목적은 단순했다. “이들을 빈곤으로 내모는 원인과 결과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보자.” 일급 저널리스트의 저작답게 풍부한 현장 취재와 꼼꼼한 자료수집이 돋보인다. 인용되는 사례의 생생함과 문체의 유려함도 독서의 몰입도를 배가시킨다. 책의 특징이라면 워킹푸어의 문제를 섣불리 사회·경제적 시스템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구조적 요인만큼이나 빈곤을 재생산하는 개인의 행위와 습속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례는 미국 연방정부가 발표한 공식 빈곤선보다 약간 낮거나 높은 수준의 생활을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생활수준은 제3세계의 독자들의 기준에선 빈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왜 하필 이들인가. “그들은 안이하게 만들어진 빈곤 정의의 경계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바로 그런 사실이 그들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든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빈곤에서 탈출하려고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볼 때 워킹푸어에게 빈곤은 경제적인 것이면서 심리적인 것, 개인적인 것이자 사회적인 것, 과거의 것이면서 현재의 것이다. 핵심은 빈곤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단단히 얽혀 있어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영향력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허름한 주거환경이 자녀 건강의 악화를 가져오고, 과다한 의료비 지출로 인한 신용 악화는 자동차 할부금 이자를 높여 값싼 고물차를 구입하게 하고, 이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것을 방해해 임금과 승진에 악영향을 미치고, 결국엔 이것이 열악한 주거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면 해결책 역시 복합적이어야 한다. 글쓴이는 말한다.
“직업 대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건강보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개선된 주택 환경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의지할 교통수단, 세밀한 가계 관리, 효과적인 육아와 학교교육도 각각이 고립되어 실현된다면 충분하지 않다. 단일 해결책은 없다. 다양한 요인들로 이뤄진 전체 구조에 손을 대는 경우에만 미국은 자신이 천명한 신화의 공약을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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