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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치-언론 짬짜미’ 홀리지 마시라

등록 2009-09-25 18:48수정 2009-09-25 18:56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퍼즐 맞추기 어려워진 뉴스
비판적으로 재조립하는 법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랜스 베넷 지음·유나영 옮김/책보세·2만7000원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는 1983년 초판이 나온 이래 여덟 차례에 걸쳐 개정을 거듭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고전이다. 책을 쓴 랜스 베넷은 언론-정부 관계, 커뮤니케이션 전략 등을 연구해온 정치학자로, 언론 보도가 힘 있는 취재원들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인덱싱 이론’의 창안자로도 알려져 있다.

책은 뉴스 미디어가 현대 정치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일종의 ‘뉴스의 정치학’에 해당하는 셈인데, 종래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뉴스 제작과 소비 과정을 면밀히 탐색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글쓴이가 볼 때 현대 정치는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는 정치’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사회운동가, 심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1인시위를 벌이는 관공서 앞 민원인도 자기 메시지가 뉴스화될 수 있도록 다듬고 가공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런데 미디어로 매개된 정치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대중들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특정 이슈조차 유력 취재원이 자신의 당파적 시각에 맞춰 ‘프레임을 짠’ 뉴스 기사를 그대로 따라 읊는 데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언론인의 지나친 밀착도 문제가 된다. 물론 이들의 유착은 서로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정치인 처지에선 자기 목소리를 뉴스에 반영시켜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존재감 있는 지도자라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고, 기자들은 생생하고 저렴한 뉴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데다 가끔 큰 인터뷰나 특종을 낚아 올릴 경우엔 능력 있는 언론인이란 평판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생산된 인터뷰와 특종이 사실은 특정 이미지를 얻으려는 정치인의 홍보 의도가 개입된 이야기일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이다. 이를 두고 글쓴이는 “언론 제도라는 게 헌법에 의해 자유와 독립을 보장받으면서도 실은 독립성이 별로 없는 정부 산하의 제4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2003년 5월1일 이라크전 종전 선언을 위해 항공기를 몰고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갑판에 착륙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치밀하게 기획된 정치 이벤트에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호응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3년 5월1일 이라크전 종전 선언을 위해 항공기를 몰고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갑판에 착륙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치밀하게 기획된 정치 이벤트에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호응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층 심각한 것은 정치 뉴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 원인으로 글쓴이는 뉴스의 연성화를 꼽는다. 실제 미국에서는 1980~99년 사이 전체 뉴스 가운데 공공정책과 관련이 없는 기사의 비중이 35%에서 50%로 늘어났다. 20%를 약간 웃돌던 스캔들 기사는 같은 기간 40%로, 10%를 약간 상회하던 미담 기사와 8%에 그쳤던 범죄·재난 기사는 각각 25%, 14%로 증가했다. 인포메이션(정보)에서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오락성 정보)로의 전환이 이뤄진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디어 합병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베넷은 “미디어 대표들은 소비자들이 이런 것을 원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증거를 종합해볼 때 인포테인먼트는 미디어 기업이 단기간에 이익을 내기 위해 써먹는 공식에 불과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연성화 못지않게 ‘정보 편향’ 역시 최근의 뉴스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인데, 그것은 △개인화 △드라마화 △파편화 등으로 나타난다. 뉴스가 사건의 전체적 맥락을 경시하면서 표면에 드러난 개인의 시련·비극·승리를 선호(개인화)하면서, 사건의 여러 측면 가운데 ‘이야기’로 쉽게 각색될 수 있는 부분이 집중 보도(드라마화)되다 보니, 각각의 이야기들이 서로 어긋나거나 큰 맥락과 단절돼 큰 그림으로 조립하기가 어려워진다(파편화된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언론에 대한 미국 사회의 신화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데 베넷의 고민이 존재한다. 그 신화는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라는 언술이 표상하는 ‘자유 언론의 신화’다. 베넷은 신화가 지탱되는 것은 그것이 정치인과 언론인, 대중에게 현실적인 이득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공공성이다. 베넷은 신화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스테레오타입과 플롯 공식을 인지하라. 추가 정보 출처를 찾고 당파적 주장을 확인하라. 스스로에게 비판적으로 되는 법을 배워라.”(시민을 위한 제안) “개인화와 드라마화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라. 자신이 지닌 배경지식을 기사에 더 많이 소개하라. 표준 플롯 공식에 저항하라. 보통 사람에게 호소하는 관점에서 정치 상황을 정의하라.”(언론인을 위한 제언)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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