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피와 눈물’의 이중주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전쟁은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이다〉
포연이 가시지 않은 건물 잔해 앞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의 눈물,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아기를 품에 안고 통곡하는 엄마, 이젠 잿더미로 변한 올리브 밭 앞에서 무릎 꿇은 농부. 여전히 테러와 보복이 반복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이다. 20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됐던 유대 민족. 그들이 이젠 팔레스타인에서 2000년 동안 살고 있던 또다른 민족인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유대인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피와 눈물의 땅으로 변했다.
2000년 이후 모두 6차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현장을 다녀온 국제분쟁 전문가인 김재명씨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을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에 담았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방벽을 쌓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옥’에서 살게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인간이라면 최소한 누려야 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고, 가족이나 친지를 방문할 자유도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 정착민이나 이스라엘 군인들로부터 날마다 크고 작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강압적 군사통제에 맞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인 ‘인티파다’는 1987년 이래 더욱더 과격해지고 있다.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더욱더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테러와 보복이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파괴와 폭력의 현장에 흐르고 있는 분노의 눈물 속에서 지은이는 정의란 무엇인지 묻는다. /프로네시스·1만8000원.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150권’ 밑천 삼은 런던 여행기
〈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줄게〉
지은이가 여행한 런던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이트 폴 성당, 영국박물관, 자연사박물관, 트래펄가 광장,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런던탑, 그리니치 천문대다. ‘이건 뭐 학창 시절 수학여행 코스도 아니고 시간에 쫓겨 지도에 점 찍었나’ 싶었다. 그런데 어라, 한두 장 읽어 내려가다 보니 ‘이야기 문을 열고 들어와 버린’ 느낌이다. 다른 여행기에서는 좀체 본 적 없던 런던의 천일야화들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고성의 성벽을 쓰다듬으며 박물관의 전시물을 바라보며 전 시대 사람들의 추억과 경험, 성공과 실패,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그려낸다.
이 책의 진짜 이야기는 295쪽부터 시작된다. 거기엔 “이 책에 영감을 준 책”의 리스트가 소개된다. 여덟 곳의 고적지마다 영감을 준 책들이 따로 있는데 고적지 하나마다 보통 20권가량이니 지은이는 어림잡아 150권이 넘는 책에서 영감을 얻은 거다. 책의 분야도 인문, 사회, 문학, 자연과학, 영화를 넘나든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퍼 나를 이야기가 있어야 더 멋진 이야기가 창조된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그 장소들은 관광지가 아니라 수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현란한 무대로 변신한다.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 가난하다지만 여름내 노래하던 베짱이가 가을에 음반 내서 돈방석에 앉고, 죽어라 일만 하던 개미가 일사병에 허리디스크 와서 몸져눕는 것처럼 이제 세월이 변했다. 이야기 부자인 지은이가 부럽고 그토록 많은 책을 읽어 제쳤지만 원전에 매이지 않고 원전 앞에 바람처럼 자유로운 지은이에게 질투가 난다. 정혜윤 지음/푸른숲·1만2000원.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이탈리아의 임상옥’ 다티니의 삶
〈프라토의 중세상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에 있는 인구 18만명의 성곽도시 프라토. 이 작은 도시의 중앙광장 한 구석에 중세풍의 가운을 걸친 흰색 대리석 입상이 있다. 환어음 뭉치를 쥔 왼손을 누군가에게 내밀고 선 형상이다. 이 등신상의 주인공은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1335~1410). 직물업과 무역업에 뛰어들어 국외에까지 이름을 떨친, 우리로 치면 조선의 임상옥쯤에 해당하는 ‘거상’이다. 그가 후세의 존경을 받은 것은 수완이 좋고 재산을 많이 모아서가 아니었다. 그는 평생 모은 재산을 고향 프라토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려준 뒤 죽었다. 그는 또 방대한 양의 문서를 남겼는데, 500여권의 원장과 회계장부, 300여장의 계약서와 보험증서, 환어음, 그리고 14만여통의 편지가 전해온다.
미국 역사학자 이리스 오리고가 쓴 <프라토의 중세상인>은 다티니의 삶을 그가 남긴 방대한 서신 기록에 바탕해 재구성한 책이다. 사업 성공담뿐 아니라 다티니와 가족·동료 등 주변 인물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어땠고, 아이를 갖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지, 어떤 옷을 입고 무슨 음식을 즐겼으며, 딸의 결혼 지참금으론 얼마를 썼는지 등이다. 당시 상인들을 괴롭힌 내세에 대한 두려움도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다티니는 회계장부의 첫머리를 항상 ‘신과 이윤의 이름으로’ 같은 문구로 시작했는데, 이를 두고 글쓴이는 돈벌이를 위해선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던 다티니도 결국엔 죄와 구원의 문제에 직면했고,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물려줌으로써 죄책감을 덜고자 했다고 풀이했다. 남종국 옮김/앨피·2만8000원.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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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해금…‘예수 성역’에 재도전
〈예수는 신화다〉
인간의 몸을 가진 신이자 구세주. 아버지는 하느님, 어머니는 인간 처녀. 12월25일생.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고,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나무 또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해 하늘로 올라간 이. 신도들이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로 그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의식을 행하고, 마침내 최후의 날 심판자로 돌아올 이. 예수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의 아티스, 시리아의 아도니스, 이탈리아의 바쿠스, 페르시아의 미트라스가 모두 위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신비주의와 이교 신앙 전문가인 지은이들은 <예수는 신화다>에서 방대한 증거를 통해 기독교의 예수 이야기가 그보다 수세기 앞선 이교도 신화들의 유대인 판본이라고 논증한다. 나아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가 이를 역사적 사실로 날조한 행위를 파헤친다.
지은이들은 반그리스도교를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예수 이야기를 신화로 봄으로써 모든 영적 전통에 담긴 통일성을 인식하고, 문자주의 기독교가 놓친 예수 신화 속에 숨겨진 깨달음의 가능성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1991년 감신대 변선환 학장이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가 교수직과 목사직은 물론이고 신자 직분까지 박탈당한 지 18년이 지났고, 2002년 이 책이 처음 국내에 출판됐다 기독교계의 공격으로 사실상 강제절판된 지 7년이 지났다. 주석까지 완역해 재출간된 이 책이 한국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성적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티모시 프리크·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미지북스·2만3000원.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1인 9색’ 구효서 단편집
〈저녁이 아름다운 집〉
구효서씨는 1987년 등단 이후 꾸준한 보폭으로 작가의 길을 걸어 왔다. 단편 아홉을 수록한 그의 새 소설집 <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어떤 소재와 주제도 능란하게 다루는 완숙한 기량을 보여준다. 하나의 틀로 꿰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가운데, 앞선 소설집 <시계가 걸렸던 자리>(2005)에서 전경화했던 죽음에 대한 사유가 이번 책에도 이어지고 있음이 눈에 띈다.
표제작은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는 중년 부부를 등장시킨다.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대서 ‘석가헌’(夕佳軒), 아름다운 집이라 이름 붙인 이 집 마당에는 그런데 난데없는 무덤 하나가 앉아 있다. 부인은 연고자를 찾아 무덤을 이장시키려 하는데, 남편은 내키지 않는 눈치다. 결국 부인이 양보한다. “죽음이야 늘 도처에 있는 건데 마당 곁에 좀 있은들 어때요”라는 말과 함께. 소설 말미에 가서야 남편이 죽을병을 숨기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마당의 무덤은 삶에 들어와 있는 죽음을 상징한다.
“죽지 않으려면 죽는 걸 겁내선 안 돼.” “죽음이 사람을 살리는 이치를 알아야 해.” <명두>의 주인공인 신기 지닌 노파는 공포에 쫓겨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특이하게도 굴참나무를 화자로 삼은 이 소설에는 또 “죽음은 끝없이 생명을 만들고, 삶은 끝없이 죽음을 낳았다”는 문장도 나온다. 삶과 죽음이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다. 시나리오 기법을 도입한 표제작, ‘~어요’ 투로 기술되는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 등은 새로운 형식을 향한 작가의 모색을 짐작하게 한다. /랜덤하우스·1만1000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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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매력에 ‘풍덩’
〈붓다에게 물들다〉
아이를 잃고 비통에 잠긴 여자가 있었다. 죽은 아이를 안고 반쯤 미쳐 돌아다니다 부처를 찾아왔다. 부처는 말했다. “여인이여,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 한 움큼만 얻어 오시오.” 겨자씨는 지천이었다. 여자는 성안의 온 집을 돌아다녔으나 겨자씨를 구하지 못한다. 지친 다리로 찾은 맨 마지막 집 앞에서 묻는다. “이 집엔 누구 죽은 사람이 없겠죠?” 이에 그 집에서 이런 힐난이 돌아온다. “여보세요,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어디 있소?” 이 여자 고타미는 그때 탁 깨달았다 한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의 고통이란 삶의 한 모습임을.
<붓다에게 물들다>는 붓다의 가르침에 물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처를 만나 부처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다. <붓다, 나를 흔들다>와 <즉문즉설> 등으로 독자층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정토회 법륜 스님이 쓴 책이다. 2006년 행한 100일 법문 가운데 일부를 추려 엮었다. 깨달음은 잠에서 깨는 것 같은 깨침의 순간으로 찾아온다고 법륜은 말한다. 부처에 반기를 들었던 제자 데바닷다의 이야기, 붓다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이 ‘국제적 인물’이 된 아들을 고국으로 초청하려 사신을 보냈으나 그 사신들이 가는 족족 붓다의 설법에 물들어 출가를 하는 이야기도 들어 있다. 법륜의 입담은 맺힌 질문에도 사통팔달, 막힘이 없다. 화통하며 위트 있게 어딘가를 콕콕 찌른다. 수행이란 사주팔자를 고치는 것이고 전생을 좋게 바꾸는 것이며 신의 축복을 받는 길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그 입담을 느끼노라면 불심이 없는 중생임에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샨티·1만1000원.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