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의 시선에 포착된 진화론은 어떤 모습일까.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과학적 보증자인가, 우승열패를 정당화하는 약육강식의 정글논리인가. 계간 <진보평론>이 다윈의 <종의 기원> 발간 150년을 맞아 진화론 특집을 선보였다. ‘다윈의 진화론과 진보의 패러다임’이란 주제 아래 5편의 논문을 묶었다. ‘진화’와 ‘진보’의 관계를 규명하고, 진보 담론에 녹아든 진화론적 사고의 빛과 그림자를 성찰하는 글들이다.
공교롭게도 진보주의와 진화론의 핵심 개념은 왜곡과 오용의 20세기를 함께 겪었다. 진화는 우생학과 파시즘에 의해, 진보는 스탈린식 생산력주의와 일당 독재에 의해 더럽혀졌다. 세기가 바뀐 지금 진보주의와 진화론이 직면한 처지는 확연히 다르다. 진화생물학이 유전학과 생명공학의 성취에 힘입어 모든 분과학문을 아우르는 통합과학의 중핵적 지위를 넘보고 있는 반면, 진보의 견인차를 자임하던 사회주의는 동구권 몰락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고, 엇갈린 둘의 운명은 또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최종덕 상지대 교수는 진보주의를 타락시킨 목적론과 본질주의를 비판하면서 다윈 진화론에서 진보의 출구를 모색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진보는 ‘형이상학적 진보’와 ‘자유주의적 진보’, ‘사회적 진보’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진보에서는 ‘이데아의 세계’나 ‘종말’ ‘유토피아’가 진보의 목적지라면 자유주의적 진보에서는 자유의 확대가, 사회적 진보에서는 지배와 불평등의 해소가 곧 진보다.
문제는 진보가 특정한 목적지를 갖는 이상 언제든 현실 권력에 봉사하는 지배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민의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던 캄보디아가 생지옥 킬링필드로 변하고, 노동자 천국을 표방하던 소련이 관료의 낙원으로 전락한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진보주의에서 목적지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진보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인데, 그는 이 ‘목적 없는 진보’의 가능성을 진화론에서 발견한다.
“다윈이 말했던 진화론의 핵심은 생명 자체가 지금도 변화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진화론은 기존 서구철학의 전통과 달리 생명종(種)의 고정된 본질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은 반실체주의이며 반본질주의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가 보기에도 다윈의 진화론은 ‘목적론’과 무관하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은 다양한 변이들 가운데 그때그때 환경에 가장 적합한 종이 선택되고 그렇지 않은 종은 점차 사멸하는 과정인데, 선택된 것은 우월한 특성을 가져서가 아니라 당시의 우연적 환경에 더 적합해서 선택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떤 목적이나 지향점도 없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마르크스가 다윈 진화론이 자연세계의 목적론을 일소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인간 사회에 대해선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못한다고 불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홍 교수는 이런 다윈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한두 가지 이론적 성과에 의존해 사회와 인간의 진보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신중한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회의 진보는 (변화가) 꾸준히 누적되면서 일어날 수 있지만, 진화와 마찬가지로 우연적 변화의 연속일 수도 있고, 진화의 방향이 필연적이지 않듯 사회의 발전 방향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는 다윈 진화론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눈길을 돌린다. 그는 150년에 걸친 진화 논쟁에서 드러난 대표적 오류로 우승열패와 직선적 진보의 신화를 꼽는데, 강 교수가 볼 때 다윈 진화론은 인내와 관찰이 이뤄낸 과학적 성과지만, 동시에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지배하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다. 특히 다윈 진화론을 계기로 ‘적자생존’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과학이란 권위의 옷을 입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됐던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본다. 실제 다윈주의를 사회현상의 해석에 적용한 사회다윈주의자들은 적자가 선택되고 부적자가 도태되는 자연법칙이 구현되기 위해선 모든 인위적 개입이 사라져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펼쳤다. 강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이 겪어야 했던 운명은 “진화론이란 담론이 지닐 수밖에 없는 물질성과 시대적 배경, 그 담론이 사회화되는 사회·정치·문화적 장의 필연적 효과인지도 모른다”며 “경쟁만이 진화의 유일한 메커니즘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생명현상을 경쟁과 협동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이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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