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김대중〉
〈만화 김대중〉
백무현 지음/시대의창·각 권 1만1800원 ‘빨갱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이자 낙인이다. 김대중은 정치를 시작한 이후 ‘빨갱이’ 논란을 비켜 갈 수 없었다. 그가 죽자 정부는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온 큰 정치인으로 예우를 다했지만 ‘빨갱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붙어 있다. 김대중은 해방 정국에서 여운형이 이끄는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한다. 그리고 백남운이 주도하는 좌익계 조선신민당에 입당해 목포지부 조직부장을 맡아 합법적 정치활동을 한다. 당시 친일파와 매국노들이 대거 우익계 정당에 가입한 데 반해, 민족적 자각이 높은 청년들은 좌익 정당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소련을 ‘조국’이라 찬양하는 데 회의를 느껴 조선신민당을 탈당해, 송진우·김성수 등이 주축이 된 우익계 한국민주당에 입당한다. 그는 더는 ‘빨갱이’가 아니었다. 일간신문에서 시사만평을 그리는 백무현 화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5권으로 이루어진 <만화 김대중>으로 출간했다. <한국 현대사>와 <만화 박정희> <만화 전두환>을 펴냈던 백 화백이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노력의 결실이다. 한 시대를 살며 빨갱이와 선생님이란 호칭을 동시에 얻은 김대중. 이런 양극단의 평가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 저자는 “꽃과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껴 인간 김대중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치밀한 자료 조사와 철저한 고증도 거쳤다. 김대중에 대해 비판적인 자료도 꼼꼼히 살펴 객관적 관점 유지에 애썼다. 중요한 부분에는 기록사진을 직접 사용해 역사성을 높였다. 책은 단순한 위인전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 김대중한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인 이희호씨가 강아지를 혼낸 것을 알고 국회에서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와 따졌다는 일화에서 보듯 그는 꽃과 동물을 좋아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그저 꽃에 물을 주기 좋아하고 뜰에 찾아오는 새에게 모이를 주는 것을 좋아하고 강아지와 노는 일상을 즐기던 여리디여린 ‘인간’이었다. 300년 전 하의도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제1권은 김 전 대통령의 ‘하의도 정신’의 뿌리를 이야기한다. 1623년 조선 인조 때 세금 착취에 항거한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농지탈환운동을 계속한 하의도 민초들의 삶을 다뤘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의3도 농민들의 정신을 가지고 끝까지 굴하지 않고 투쟁해 왔다”는 그의 정신적 배경을 가늠케 한다. 후반부는 하의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대중이 정계에 입문하기까지를 담았다.
제2권은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와의 투쟁을 그렸다. 곧 출간될 3권은 서울의 봄부터 신군부 독재세력과 맞선 민주화 투쟁 과정을 담았다. 4권은 6월항쟁에서 청와대에 입성하기까지 험난했던 과정을 되짚고 있다. 5권은 아이엠에프 환란 극복, 남북정상회담 등 그가 남긴 역사적인 업적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고 있다. 백 화백은 “그의 생애는 너무나 넓고 거대해 5권으로 담아내기에 벅찼다”며 “그래도 김대중의 가치와 정신만큼은 빠뜨리지 않고 담아내려 애썼다”고 말한다. 빨갱이라는 굴레 속에서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거목이 된 김대중. 정치공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간신히 살아돌아온 날 그는 서럽게 울었다. 광주 망월동 묘역을 처음 찾았을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을 때도 처절한 눈물을 흘렸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는 그의 말에서 뜨거운 가슴과 아이 같은 천진함을 지닌 휴머니스트의 모습을 본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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