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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나누고 밥심 키운 ‘민주정부 10년’ 재평가

등록 2009-09-10 19:12

박정희·전두환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정부는 경제운용 능력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압도했는가. 사진은 노무현·박정희 전 대통령(왼쪽부터)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전두환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정부는 경제운용 능력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압도했는가. 사진은 노무현·박정희 전 대통령(왼쪽부터) <한겨레> 자료사진
임혁백 ‘민주세력 무능론’ 정면 반박




‘서울민주주의포럼’ 발표문서 참여정부 경제성장 분석
박정희 ‘밥 먹게 해줬다’ 경제개발 신화 허구론 파헤쳐

“민주정부의 성과는 부당하게 축소된 반면, 권위주의 정부의 성과는 과대평가돼 왔다.”

임혁백(57·사진) 고려대 교수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민주 세력 무능론’을 정면 반박했다. 성공적 산업화를 위해 일정 기간 권위주의 통치가 필요했다는 ‘개발독재 불가피론’에 대해서도 “근거가 부족하고 경험적으로도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9일부터 열고 있는 ‘서울 민주주의 포럼’ 발표문을 통해서다.

임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과 대통령직 인수위 정치개혁 연구실장을 지낸 중도개혁 성향의 정치학자다. 이런 이유로 그의 이번 발언을 집권세력의 ‘잃어버린 10년론’에 대한 반격의 서막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죽음 이후 옛 여권이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재평가를 공언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더한다.

임 교수는 글에서 1960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민주화·산업화에 관한 보수적 억견을 비판하는 데 주력한다. 목표는 물론 ‘민주세력 무능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박정희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다. 임 교수가 볼 때 박정희 신화는 근대화론과 집정관주의 국가론, 관료적 권위주의론에 기반해 있는데, 이 이론들은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산업화 초기에는 ‘권위주의 국가’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권위주의 성향의 ‘강한 국가’만이 산업화를 반대하는 반동계급의 저항을 억누르고, 노동계급의 임금 인상 요구을 억제해 자본 축적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임 교수는 박정희 집권 전부터 한국에는 이런 조건들이 충족돼 있었다고 본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업화의 잠재적 저항세력인 지주계급은 몰락했고, 이미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농촌의 잉여노동력이 국가 개입 없이도 저임금을 지탱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임 교수는 한국과 달리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이룬 사례도 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일본의 경우다. 이런 이유로 임 교수는 “박정희는 산업화를 위해 독재를 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체제를 위해 한국을 산업화하려 했다”고 단언한다.


임혁백(57) 고려대 교수
임혁백(57) 고려대 교수
1960~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의 동력을 박정희가 선택한 개발전략과 정책 효율성에서 찾는 견해를 두고서도 임 교수는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주장들은 산업화에 유리했던 지정학적 요인과 미국의 우호적 지원, 유교 문화와 식민지 경험의 유산 같은 외생변수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따라서 “권위주의 정부의 기적적 성과물을 평가할 때는 독재자들이 과거와 외세,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외생적 행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임 교수가 노태우 정부의 정치사적 의미를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는 점이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권위주의적 개발론자들의 우려대로 억눌렸던 노동자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됐지만, 이것이 경기 침체와 민주주의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노태우 임기 동안의 경제성장은 다른 선진국이나 신흥 공업국에 견줘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며 “민주주의 이행 비용을 최소화하고 권위주의로의 회귀 위험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노태우 정부는 이행기 정부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란 주장 역시 터무니없는 모략이다. 민주화 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로도 경제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분배를 하면서도 충분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줬냐”는 냉소에 대해 “밥 먹여준 게 맞다”는 게 임 교수의 응답인 셈이다. 임 교수의 글은 행사 마지막날인 11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한국 민주화운동 성찰’ 세션에서 발표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www.kdemocracy.or.kr)가 한국의 민주화 경험을 아시아 각국과 공유하고 아시아 민주화를 위한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9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번 행사에는 네팔·동티모르·몽골·버마(미얀마)·인도·인도네시아·일본·중국·캄보디아·필리핀 등 아·태지역의 정부·비정부 기구 인사 40여명이 참석했다. 셋쨋날인 11일에는 △지방 거버넌스의 강화 △한국과 아시아-민주화 경험 공유 등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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