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서 삶을 춤추다〉
〈세상 끝에서 삶을 춤추다〉
박상주 지음/북스코프·1만3000원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고도 쿠스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낯선 공기를 탐색했다. 하반신은 잉카, 상반신은 스페인으로 이루어진 슬픈 혼혈의 도시. 이곳에서 30분을 더 들어가면 쿠스코 산세바스티안 코라오 마을 도자기 학교가 나온다. 길동수씨가 부인 박은미씨와 함께 고려청자에 잉카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곳이다. 동수씨는 “가슴 한가운데 이상한 벌레가 사는 것처럼 허전한 구멍이 채워지지 않아 이곳에 왔다”고 말한다. 지은이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끈 것은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노승의 말이었다. “비워라. 그래야 새것으로 채울 수 있느니. 낡은 것을 잔뜩 움켜쥐고 있으면서 어느 구석에다 새것을 채울꼬….” 몇 날을 고민한 끝에 20년 기자 생활과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비움의 긴 여행을 시작했다. 남미로 중앙아시아로 아프리카로 동남아시아로, 그렇게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나날 속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세상 끝에서 삶을 춤추다>는 과감하게 ‘오늘의 일상’을 멈추고 ‘행복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짙푸른 초원에서 동물들이 뛰노는 야생의 땅 케냐. 하지만 그 앞에 펼쳐진 아프리카는 초라하고 지친 모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최인혁씨는 아프리카 한복판에서 우물 51개를 파거나 재생했다. 오랜 가뭄으로 눈물조차 말라버린 사람들에게 물을 마실 수 있게 만들었다.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시티는 ‘정글 도시’다. 대낮에도 총격이 일어나고, 칼이나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이 정글에서 독충에 물려 죽는 사람 수보다 훨씬 많다. 정점순 수녀는 이곳에서 ‘불우 청소년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는 여기서 거리의 아이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날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은이는 체 게바라가 혁명의 꿈을 접고 눌러앉고 싶어했던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우은정씨는 밥벌이의 구속에서 벗어나고파 달랑 배낭 하나 메고 중국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뒤 우즈베키스탄으로 훌쩍 날아와 부하라 국립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하충현씨는 고려인들의 영정 사진을 찍어주며 그들의 고독과 그리움을 치유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일했던 유성주씨는 “과장, 부장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스콧 니어링의 삶을 꿈꾸며 이집트 카이로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이집트 룩소르는 한때 ‘테베’라고 불렸다. 숱한 신화와 전설의 무대이기도 하다. 모현희씨는 이곳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김정우씨는 킬리만자로를 품은 야생의 땅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필리핀 반군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젊은이들도 있다. ‘인간이 세운 신의 영역’ 이집트에서는 여행의 의미를 묻는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할까.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일까.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서일까.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일까.” 세계 오지의 주민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아파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에도 소박한 웃음과 뜨거운 열정이 있다. 그곳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모든 삶이 귀하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다. 하나같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고 감사하며, 비워야 채워지는 삶을 살고 있다. ‘여행 에세이’이자 오지에 대한 ‘희망 보고서’인 책은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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