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불복종〉
〈미술의 불복종〉
김정락 지음/서해문집·1만2900원 풍경화는 어떻게 탄생하고 변모해왔는가. 초상화의 묘사방식이 시대마다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술의 불복종>이 답하려는 질문은 이것 말고도 많다. 리얼리즘 미술의 미래는 있는가.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왜 없는가. 글쓴이 김정락(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씨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전공자답게 이집트의 파라오 마스크에서 20세기 페미니스트 미술가의 행위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갈래의 미술작품을 통해 제기된 물음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글쓴이가 선택한 문제 해결의 열쇠는 ‘권력’과 ‘사회’다. 예술작품의 생산과 소비를 관통하는 권력관계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파헤침으로써 미술의 다양한 사조와 갈래(장르)가 밟아온 계통발생의 역사를 조명하려는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장르의 사회사’이자 ‘예술-권력의 계보학’이다. 글쓴이가 해부한 미술의 역사는 순응과 거부, 복종과 반항의 역사다. 권력과 밀월했던 대표적 장르는 초상화였다. 초상화의 비애는 실재 인물을 ‘대리’하는 본연의 기능과 관련이 깊었다. 초상화의 대리 기능은 초상된 실재 인물과 닮음을 전제로 했는데, 이 닮음은 외모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권위까지도 포함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집트의 파라오상에서 중세 말 유럽의 귀족 초상에 이르는 대부분의 초상화는 인물의 개성적 특징을 배제하고 권력자를 이상화·신격화하는 정치적 기능까지 떠맡았다. 반면 판화는 비용의 저렴함과 요청되는 기교의 소박함, 복제가 가능한 장르적 장점 덕에 민중의 고통스런 삶과 권력의 전횡을 고발하는 정치적 기능을 떠맡았다. 전쟁의 참화와 권력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와, 억압받고 학대받는 인간의 모습을 단골로 형상화한 케테 콜비츠의 판화 연작이 대표적이다. 글쓴이는 이들의 작품이 “민중의 소박한 정서에다 그것에 기인한 정직한 힘을 갖고 있기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뿐 아니라, 미술이 인간의 내재된 고통을 이야기하는 한 역사가 변해도 생명력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술의 재현 기능에 내포된 사회성과 정치성은 때론 그것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독일 나치정권의 탄압이 그 사례다. 1937년 나치정권은 뮌헨에서 ‘퇴폐미술전’이란 이름의 전시행사를 개최했는데, 거기에 초대된 작품들은 에밀 놀데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같은 표현주의 거장들, 당시 독일인들이 ‘시온의 고아들’이라고 불렀던 유대인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표현주의자들의 작품이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의 표현 형식이 나치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미학에 극단적으로 대립된다는 이유였다. 미술전이 끝나자 1만6000점의 작품이 공공미술관에서 추방·소각됐고, 케테 콜비츠나 에른스트 바를라흐 같은 미술가들은 대학에서 강제 해직당했다. 동서와 고금을 종횡무진으로 횡단하며 다양한 작품과 작가들을 일별한 끝에 글쓴이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미술의 가치는 미술이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반항과 불복종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보호해 주는 사회와 제도, 관습에 저항하고 불복종하는 순간 미술은 자율적 위치를 얻고, 자기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인간 없는 자연을 처음으로 작품화한 르네상스 풍경화에서 자연의 사실적 재현에 충실했던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와 목가적 자연을 낭만화한 18세기 전원화를 거쳐, 원시적 자연의 숭고미를 형상화한 19세기 자연화에 이르기까지, 유럽 풍경화의 변천 과정을 상실되는 자연에 대한 재향유 충동을 통해 설명하는 7장 역시 많은 정보와 생각거리를 던진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