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장’으로 불리는 카우프만 주택.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1935년 설계했다. 아무도 살지 않아 주택의 용도를 상실했음에도 이곳은 건축학도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건물’이 아니라 ‘건축’인 것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대답위해
비트루비우스·르코르뷔지에 등
고대~현대 건축가·건축물 탐구
건축을 묻는 질문주체까지 질문
비트루비우스·르코르뷔지에 등
고대~현대 건축가·건축물 탐구
건축을 묻는 질문주체까지 질문
〈건축을 묻다〉
서현 지음/효형출판·1만5000원 이 책, <건축을 묻다>의 정체는 모호하다. ‘서현의 인문적 건축론’이란 부제는 글쓴이의 이름과, 이 책이 ‘인문학적’으로 풀어 쓴 ‘건축’에 관한 것이라는 단순 서지사항만 알려줄 뿐이다. 책 속에 답이 있을까, 책장을 들춰봐도 마찬가지다. 에세이 같기도, 역사책 같기도, 개론서 같기도 하다.
글쓴이 서현 교수는 우리 건축계에서 ‘문장을 하는’ 몇 안 되는 건축가(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0년 전 건축물도 음미와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책 한 권으로 독자들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켰다.
책은 하나의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한다. “건축은 무엇인가.”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글쓴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현재로 귀환하는 멀고 긴 여정에 나선다. 이 점에서 ‘자기를 찾아 떠나는 문제적 개인(주인공)의 여행’에 비유되곤 하는, 근대 소설의 형식과도 이 책은 닮았다. 주인공은 물론 ‘건축’이다. 서현이란 인물은 ‘화자’일 뿐이다.
여행은 수많은 물음들을 만나고 풀어가는 과정이다. “건축은 예술인가.” “건축의 가치는 무엇인가.” “건축가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화자는 역사에 기록된 건축계 인물과 사건, 건축물 등을 차례로 호명한다. 비트루비우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알베르티, 베르니니, 그로피우스, 르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같은 거장들이 소환되고, 파르테논 신전에서 판테온, 샤르트르 성당, 루브르궁을 거쳐 수정궁, 낙수장, 빌라 사보아에 이르는 기념비적 건축물이 논변의 증거물로 채택된다.
이를 통해 파악된 건축의 역사는 별 볼 일 없는 기능인에 불과하던 ‘건축쟁이’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들의 행위를 변론할 이론 체계를 갖추면서 ‘예술가’와 ‘학자’의 지위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다. 이후 건축은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서 존재의 이유를 탐색하다 ‘공간’과 조우하고 그것을 재정의하는 가운데 ‘사회’를 발견하면서 진정한 ‘자기 인식’의 단계에 접근해 가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건축이 담아야 하는 사회와 물리적 구조물 사이에서 생겨나는 필연적 모순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수많은 물음들이 던져지지만, 그 방식은 돌출적이지 않다. 하나의 물음에 답하면 그로부터 또다른 물음이 파생되는 식이다. 일례로 ‘건축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예시와 논증을 동원해 ‘그렇다’고 답한다면, ‘저 건물이 예술 작품인가’라는 반례를 동원한 파생 질문이 이어진다. 이에 대한 답은 ‘건축’과 ‘건물’을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다. “건축은 예술이되 건물은 그렇지 않다.” 이제 건축과 건물의 구분선이 문제가 된다. 책은 건축물의 ‘용도’를 통해 답변한다. “어떤 건축적 구조물에서 용도가 사라졌을 때 존재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건물이다. 그러나 용도가 사라졌더라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건축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남대문은 ‘통로’로서의 용도가 사라졌어도 존재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건축’인 반면, 용도가 다한 도심의 자전거 보관대는 존재의 의미 또한 없기에 ‘건물’이다. 이를 통해 도출되는 것은 “건축은 기능적 목적에 의해 공간을 만드는 예술이다”라는 결론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렇다. “건축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조직하는 예술이다.” “건축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재조직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건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건축이 무엇이냐고 스스로 묻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 주체에 대한 질문 역시 포함한다. 건축가의 기능과 역할, 가치에 관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화자가 준비한 답은 이렇다. “건축가는 인간의 생활, 인간의 체계, 즉 사회가 이렇게 재조직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사람이다. 건축가의 도구는 공간이며, 건축가의 무기는 내적 성찰에 근거한 상상력이다. 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시작해서 상상력으로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건축가의 모습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서현 지음/효형출판·1만5000원 이 책, <건축을 묻다>의 정체는 모호하다. ‘서현의 인문적 건축론’이란 부제는 글쓴이의 이름과, 이 책이 ‘인문학적’으로 풀어 쓴 ‘건축’에 관한 것이라는 단순 서지사항만 알려줄 뿐이다. 책 속에 답이 있을까, 책장을 들춰봐도 마찬가지다. 에세이 같기도, 역사책 같기도, 개론서 같기도 하다.
〈건축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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