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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태곳적 인류에겐 원초적 ‘대칭 본능’ 있었다?

등록 2009-07-17 19:34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일본 지성계 ‘별종’ 나카자와 신이치
구석기 예술에서 인류 대칭성 탐색
“예술 인류학적 탐구는 무의식 탐험”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김옥희 옮김/동아시아·1만2000원

나카자와 신이치(59·다마미술대학 교수)는 일본 지성계의 ‘야생적 별종’이라 할 인물이다. 합리적 세계인식이라는 근대 학문의 일반적 경향을 거슬러, 인간의 합리적 사고 너머의 ‘야생적 사고’를 추적하고 거기서 인류 삶의 대안을 찾는 사람이 나카자와다. 그는 ‘가로질러 사유하기’에 능통한 사람이다. 도쿄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했지만, 나카자와의 전공을 종교학이라고 딱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종교학은 나카자와 사상을 구성하는 재료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인류학과 신화학을 기본으로 삼아 철학·수학·물리학·생화학·정신분석학을 두루 관통하는 것이 나카자와 사유의 특징이다. 이 모든 학문을 횡단하여 그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은 논리적 사유질서 이전의 원초적 삶의 상태다. 학문과 지식을 총동원해 학문 너머의 어떤 것을 불러낸다는 점에서 그를 지식의 샤먼, 사유의 주술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카자와는 2006년 봄에 다마미술대학에 예술인류학연구소를 세워 소장을 맡고 있다. 그 연구소를 세우기 직전에 출간한 것이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이다. 이 책은 나카자와를 한국 독자들에게 알린 ‘카이에 소바주’(야생 수첩) 총서의 속편이자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에서부터 <대칭성 인류학>까지 모두 다섯 권으로 묶인 이 총서는 나카자와 사유가 가장 체계적이고 대중적으로 펼쳐진 강의록이다. <예술인류학>은 이 총서에 등장하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삼되, 특히 <대칭성 인류학>의 논의를 부연하고 심화하고 있다. 총서 발간 직후인 2003년부터 2006년 사이의 강연문 9편을 묶었다. ‘대칭성 인류학’은 여기서 ‘예술인류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예술의 탄생’과 ‘대칭성 사유’의 관계를 탐색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구석기 인류의 마음을 보여주는 라스코 동굴벽화
구석기 인류의 마음을 보여주는 라스코 동굴벽화
나카자와가 <대칭성 인류학>에서 밝힌 ‘대칭성’이란 ‘비대칭성’의 상대적 개념이다. 나카자와는 2001년 9·11 뉴욕테러 사건에서 ‘압도적 비대칭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9·11 테러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압도적 일극체제, 곧 비대칭적 체제가 낳은 사건이다. 이런 비대칭적 일극주의는 나카자와의 인류학적 사유 지평 위에서 국가의 탄생, 유일신 종교의 등장, 그리고 자본주의 발흥과 일직선상에 있는 근본구조로 이해된다. ‘압도적인 비대칭적 구조’가 문명 발생 이후 인류의 삶을 규정해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 압도적 비대칭성에 대립하는 것이 ‘대칭성’인데, 국가와 일신교가 생겨나기 이전의 인류의 야생적 삶에서 그 대칭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나카자와의 발상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 공존·공생의 대칭성이 자리잡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인데, 나카자와는 신화학과 인류학의 연구들이 이 시기 인류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예술인류학>은 그 대칭성 구조를 구석기 예술을 실마리로 삼아 탐색한다. 나카자와가 여기서 사례로 끌어들이는 것이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다. 이 벽화야말로 신석기 혁명 이전 인류 삶의 예술적 흔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벽화가 초기 현생 인류의 마음이 활동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카자와는 10만년 전에 출현한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그 이전의 인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이 ‘마음’에 있다고 본다. 현생 인류는 대뇌의 빅뱅을 겪었다. 뉴런과 뉴런이 대거 연결돼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그 네트워크를 통해 자극들이 종횡으로 내달렸는데, 이런 자극들의 종횡무진 상태에서 마음이 탄생했다고 나카자와는 말한다. 생각들이 대뇌를 일시에 유동하면서 형성된 것이 마음이다. ‘유동하는 마음’은 ‘망상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망상이란 생각과 대상 사이의 즉각적 일치가 실현되지 않고, 대상과 상관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곧 자유로운 생각을 뜻한다. 이 망상 속에서 구현된 것이 라스코 동굴의 동물 벽화들이라고 나카자와는 말한다.

이 망상은 제멋대로 날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압박 속에서 심층으로 가라앉게 된다. 이것이 무의식이다. 따라서 무의식은 현생 인류 초기의 ‘유동하는 마음’을 그대로 품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유동하는 마음’의 기본적 활동 양상이 ‘대칭성’이라는 점이다. 논리적 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는 것이 대칭적 사유인데, 그런 대칭적 사유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신화들이다. 신화 안에서 인간은 동물로 변하고 동물과 교접하며 동물과 하나가 된다. 따라서 신화가 힘을 발휘하는 곳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 단절의 벽이 없고, 그런 만큼 자연을 과도하게 약탈하는 행위도 없다. 또 자연에 감사하는 종교적 의식도 여기서 발생한다. 예술의 탄생은 종교의 탄생, 신화의 탄생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나카자와는 예술을 인류학적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것은 우리 마음의 밑바닥, 곧 무의식을 탐험하는 일이 되며, 결국에 비대칭적 구조를 넘어 인류의 태곳적 삶에 깃든 대칭적 질서를 재발견하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그 대칭적 질서가 인류가 도달해야 할 미래라고 나카자와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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