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1·2·3〉
후설 지음·이종훈 옮김/한길사·2만2000~2만8000원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1859~1938·사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전 3권)이 이종훈 춘천교대 교수의 번역으로 완역됐다. 옮긴이는 <시간의식>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데카르트적 성찰>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과 같은 후설의 주요 저작을 번역한 후설 전문 연구자다.
현상학은 지난 세기 벽두에 출현해 20세기 철학 흐름에 원천을 제공한 새로운 사상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실존주의의 대표자라 할 마르틴 하이데거를 비롯해 카를 야스퍼스,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에마뉘엘 레비나스 같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이 현상학의 자장 안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 운동을 만들어낸 후설은 자신의 철학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곡해와 편취의 대상이 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후설이 아끼던 제자들마저 그의 뜻을 온전히 받들지 못했다. 후설이 “현상학, 그것은 하이데거와 나다”라고 선언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수제자 하이데거는 스승과의 견해 차이로 결국 결별했고, 나중에 나치에 가담했다. 유대인 후설은 나치 치하에서 학문적 박해를 받다가 1938년 사망했다.
후설 현상학이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정작 철학 자체가 오해의 덫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후설의 학문 태도에도 원인이 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 사상을 통일적인 ‘체계’로 보여주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가 체계에 무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엄밀함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지적인 정직성을 결벽증에 가깝께 추구했던 후설은 자신의 견해를 거듭 수정하고 그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이런 이유로 그는 체계를 세워 서술에 돌입했다가도 중도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끝을 보여주지 못했다. 원고는 서랍에서 잠자기 일쑤였다.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은 이런 시기의 한중간에 집필한 저작이다. 그는 지식계의 급증하는 관심과 요구에 부응해 자기 철학의 방법과 목적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겠다는 뜻을 품고 1913년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체 3부로 계획된 책은 결국 1부(이 책의 첫 권)만 묶여 나왔고, 나머지는 보류되고 말았다. 2부는 1부와 함께 집필됐으나 또 수정과 가필을 거듭하다가 사후에야 출간됐다. 그것이 이 책의 2권과 3권이다. 마지막 3부는 초고도 쓰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책의 제목 가운데 ‘순수현상학’ 부분만 전체 3권으로 묶인 셈이 됐고,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은 구상 단계에 머무르고 말았다.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의 내용은 말년의 저작 <데카르트적 성찰> <유럽 학문의 위기와 현상학적 철학>에 일부가 나뉘어 담겼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말하자면 이 저작은 초기 후설의 사유를 건네받아 후기 후설로 이어주는 일종의 미완성 종합이다.
후설 현상학의 오해는 ‘현상학적 방법’과 ‘현상학적 철학’이 분리된 뒤 그 방법만 수용된 것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현상학(Ph<00E4>nomenologie)이란 말은 그리스어 ‘파이노메논’(phainomenon)을 어근으로 한 말이다. 파이노메논은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 ‘나타나는 것’ ‘현상하는 것’을 뜻하는데, 바로 이것을 해명하는 학문이 현상학이다. 후설의 현상학은 기존의 모든 편견과 관념에서 벗어나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사태 자체’를 직관함으로써 본질을 인식하는 것을 방법론으로 삼는다. 기존의 편견과 관념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자연적 인식 태도를 ‘판단중지’시켜야 하며, 대상 세계 전체를 괄호로 묶어놓은 채, 순수한 사태 자체로 향해야 한다.
이렇게 본질을 직관하는 의식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이 책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의 중심 내용 가운데 하나인데, 여기서 후설이 제시하는 개념이 ‘의식작용’(노에시스)과 ‘의식대상’(노에마)이다. ‘의식작용’이 감각자료에 의미를 부여해 구성한 것이 ‘의식대상’이다. 의식작용과 의식대상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둘 사이를 묶어주는 의식의 원초적 태도가 지향성(Intention)이다. 이때 지향성은 인간의 의식 안에서 시간체험을 통해 구성된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인간은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지향성 위에서 사태(현상)가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후설 현상학의 방법론이다.
옮긴이는 후설 현상학이 제시한 방법은 과정이자 도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후설은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인간 이성을 비판하고 새롭게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세기 이래 학문의 지배적 이념이 된 실증주의는 이성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 표면적 목표만 추구했는데, 그런 이성 망각이 유럽 학문에 위기를 가져왔고 인간성을 위태로운 국면으로 들이밀었다는 것이 후설의 진단이다. 후설 현상학은 이성의 자기반성 능력을 되살려 앎과 삶의 주체인 인간 이성의 본디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바, 이것이 후설의 철학적 목적이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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