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괴테 자서전’ 왜 26살 여름에서 끝나나

등록 2009-06-12 20:4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삶에서 발전의 시기가 가장 중요”
사랑·위기·사상·마성적인 힘 등
내적 성장에 영향 준 사실·허구 묘사




〈괴테 자서전-시와 진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전영애·최민숙 옮김/민음사·4만5000원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그림)의 자서전 <시와 진실>이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 교수와 최민숙 이화여대 교수의 공역으로 새롭게 나왔다. 전영애 교수는 <괴테 시 전집>도 함께 번역해 펴냈다.

<시와 진실>은 괴테 생애 후반기 위기의 산물이다. 중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시기를 겪은 뒤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이 자서전이다. 괴테는 60대 전반기에 이 작품을 집중적으로 집필해 전체 4부 중 3부를 완성했다. 그러나 4부에 착수하고 얼마 안 돼 중단한 뒤 죽음을 앞둔 말년에 다시 집필해 나머지를 탈고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자서전은 출생에서 시작해 괴테 생애 결정적 전환점인 26살 여름에 끝난다. 이때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군주인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초청을 받아 바이마르로 간다. 자서전을 여기서 종결한 것과 관련해 만년의 괴테는 요한 페터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도대체가 한 개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발전의 시기다. 내 경우 이 발전의 시기는 내가 자세하게 기록한 ‘진실과 시’와 함께 끝난다.”(<괴테와의 대화>)

괴테가 이 자서전을 구상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식물변형론’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발육과 형성을 식물의 생장에 빗대어 서술하려는 것이었다. 괴테는 발표하지 않고 남겨둔 자서전 3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책들을 식물의 변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법칙들에 따라 구성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1부에서는 어린아이가 뿌리를 뻗고 떡잎을 펼치게 되며, 2부에서는 소년이 생동하는 초록빛으로 가지들을 키우게 되고, 3부에서는 줄기가 꽃망울을 틔워 꽃을 피우는 청년기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물변형론은 끝까지 관철되지 못하는데, 삶에 끼어드는 우연적 요소의 힘을 깨달은 것이 그런 서술을 방해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열매들이 채 익기도 전에 갖가지 우연으로 인해 떨어지는가.”

자서전의 제목 ‘시와 진실’은 본디 ‘진실과 시’로 돼 있었으나 운율을 고려해 뒤에 ‘시와 진실’로 바꿨다고 한다. 이 제목의 두 단어는 이 자서전의 구성 방식을 암시한다. ‘진실’이 시대와 삶의 사실들을 가리킨다면, ‘시’는 문학적 가공을 뜻한다.

〈괴테 자서전-시와 진실〉
〈괴테 자서전-시와 진실〉
괴테는 자서전이 결코 사실들만의 나열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처음부터 알고 문학적 픽션을 동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괴테는 엄밀한 사실과 허구적 요소를 버무려 이 자서전을 서술했다. 그 결과로 일종의 교양소설(성장소설)과도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 안에서 괴테는 당대의 정신사·문화사·사회사를 꼼꼼히 기술하면서 그런 외적 힘들이 주인공의 내적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묘사한다.

이 자서전은 실존의 위기가 주인공의 창조성을 자극했음을 알려준다. 청년 괴테의 위기는 연애 사건으로 다가오는데, 샤를로테 부프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열병을 앓은 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태어나고, 릴리 쇠네만과의 약혼과 파혼이 희곡 <에그몬트>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삶의 위기를 더 큰 창조력으로 돌파하는 것인데, 그런 과정에서 ‘질풍노도 문학’의 대표작이 터져나온다. 그리하여 이 자서전은 “우정과 사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시절”의 폭풍과도 같은 열정이 독일 문학사의 청춘 시기를 창출했음을 증언한다.


괴테의 자서전은 청년 괴테의 삶을 빼어나게 묘사한 자서전 문학의 전범이자 후대의 사상가들에게 창조적 사유의 씨앗을 제공한 저작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자서전의 처음 몇 장면에서 어린아이의 심리에 관한 통찰을 이끌어냈다. 괴테는 네 살 무렵 소꿉놀이를 하다가 집에 있는 자기 그릇들을 모조리 창밖으로 내던져 깨뜨렸음을 기억해내는데, 프로이트는 <괴테의 ‘시와 진실’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이 충동적 행위를 남동생의 출생에 따른 상실감으로 해석했다. 부모의 사랑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이 난데없는 침입자를 창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싶다는 소망이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이다.

괴테는 이 자서전 4부의 마지막을 ‘데몬적인 것’(마성적인 것)에 대한 묘사와 설명으로 채우고 있는데, 이 설명은 청년 죄르지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의 논리를 구축하는 데 주춧돌 구실을 한다.

괴테는 ‘거대하고 파악할 수 없는’ 마성적인 것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것은 비이성적으로 보이니 신적인 것은 아니었고, 지성을 갖고 있지 않으니 인간적인 것도 아니었다. 선을 행하니 악마적인 것도 아니었고, 종종 남의 불행을 보고 고소해하니 천사 같은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영혼을 침탈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흔들어버리는 이 마성적인 힘이야말로 근대 소설 주인공의 내면에 웅크린 힘이라고 루카치는 해석한다. “소설은 신에게서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다. 소설 주인공의 심리는 마성적이다.”(<소설의 이론>) 이 마성적인 힘은 인간의 식물적·자연적 성장을 뒤틀어버리는 힘인데, 괴테의 자서전은 이 힘에 대한 인식으로 끝나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