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 지도원(오른쪽 끝)이 농촌 여성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 가족계획사업이 시작된 1962년 당시 교육 내용은 산모 나이 35살까지 3년 터울로 4명의 자녀만 낳자는 것이었다. 인물과사상사 제공
자녀 입시·결혼·부동산 전투 내몰려
정부·언론, 책임 떠넘기고 비판하고
“육아제도 대안없인 모두가 희생자”
정부·언론, 책임 떠넘기고 비판하고
“육아제도 대안없인 모두가 희생자”
〈어머니 수난사〉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한국 생활사’ 집필을 평생 작업으로 구상중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 농축된 한국형 가족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파헤쳤다. 책 제목이 <어머니 수난사>다. <입시전쟁잔혹사>에 이어 넉 달 만에 선보인 생활사 단행본이다. 그런데 왜 ‘수난사’인가.
강 교수가 볼 때 한국의 어머니들은 생존을 위해 각개약진해야 했던 사회에서 가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과잉 순응’ 전략으로 ‘투사’가 됐다.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입시전쟁 투사, 치맛바람 투사, 자녀결혼 투사, 부동산 투사. 전투의 일선으로 내몰린 이들에겐 사는 게 축복일 리 없었다. 싸움으로 점철된 역사는 고난의 역사, 시련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자기희생’의 상징이자 실체로 자리잡았다.
이런 어머니의 역사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 사건으로 강 교수는 한국전쟁을 꼽는다. 전쟁은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피붙이의 중요성을 실감케 함으로써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를 한층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물론 ‘강한 어머니 만들기’에는 정부도 한몫했다. 1955년 정부는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는데, 이를 통해 전파시키려고 했던 것은 어머니의 끊임없는 인내와 희생이었다. 해마다 어머니날이 오면 대통령 담화가 발표됐고, 언론은 “자녀의 빛나는 생을 위하여는 자기 몸을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앞다퉈 강조했다. 이즈음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부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자유부인>이 반향을 일으키자, 정부와 사회단체들은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허벅지 살을 도려내 복약시켰다는 ‘허벅다리 부인’의 사연을 발굴해 맞세우기도 했다.
60년대에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전투적인 가족계획이 추진되면서 가족 구성과 어머니의 구실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돈 쓰고 로비도 불사하는 것을 가리켜 ‘치맛바람’이라 이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정부와 언론은 공모한 듯 거세게 치맛바람을 질타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모든 궂은일은 어머니가 떠맡게 하는 구조를 온존·강화하면서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문제의 책임을 어머니들에게 돌리는 수법은 이후 지속되는 어머니 수난사의 핵심을 구성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복부인’과 ‘신사임당’이 공존한 70년대를 거쳐 입시전쟁에 질적 전화가 이뤄지는 80년대가 열렸다. 입시전쟁도 점차 제도화·체계화의 길을 밟는데, 더는 어머니의 희생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계급전쟁’의 양상을 띤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어머니가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의 크기와 현명함 또는 영악함”이 중요했다. 8학군 신드롬과 함께 중산층의 강남을 향한 질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97년 외환위기는 ‘강한 어머니’를 다시 호명했다. ‘남편 기 살리기’를 강조하는 신현모양처론이 유행하는 가운데 한쪽에선 ‘아줌마 때리기’가 본격화됐다. 아줌마 때리기는 기혼 중년여성의 가족 이기주의와 공공의식 부재를 문제삼았다. “어머니는 찬양하고 아줌마는 때려라”였다. 아줌마를 어머니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이런 심리를 강 교수는 ‘자궁 가족’ 이기주의로 규정한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벌이는 투쟁은 아름다워도 너의 어머니가 너를 위해 벌이는 투쟁은 추하다는 이중적 인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런 어머니 수난사를 야기한 주범으로 ‘가족주의’를 지목한다. “자궁 가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일부 어머니들은 ‘복부인’이 되기도 했고 ‘마담뚜’의 도움을 받아 ‘정략결혼’의 수익성을 최대화하고자 했다. 일부 어머니들은 ‘기러기 엄마’가 되기도 했고, ‘원정출산’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 경제적 능력이 못 되는 어머니들은 ‘우골탑’ 대신 ‘모골탑’을 쌓았다. 많은 어머니들이 극성 엄마, 속물 엄마, 부패 엄마 노릇을 불사했다.” 문제는 이렇게 험난한 어머니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말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강 교수는 이를 일러 “모두가 희생자요 모두가 불만인 체제”라고 한다. 비극은 이 체제의 덫을 벗어날 속시원한 방도를 누구도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진보진영을 향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투쟁의 틀을 벗어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라”고 주문한다. “당장 어머니들의 육아 부담을 제도적으로 덜어주는 게 백날 ‘신자유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극복책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머니가 투사가 되어야만 하는 잔혹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한국 생활사’ 집필을 평생 작업으로 구상중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 농축된 한국형 가족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파헤쳤다. 책 제목이 <어머니 수난사>다. <입시전쟁잔혹사>에 이어 넉 달 만에 선보인 생활사 단행본이다. 그런데 왜 ‘수난사’인가.
〈어머니 수난사〉
강 교수는 이런 어머니 수난사를 야기한 주범으로 ‘가족주의’를 지목한다. “자궁 가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일부 어머니들은 ‘복부인’이 되기도 했고 ‘마담뚜’의 도움을 받아 ‘정략결혼’의 수익성을 최대화하고자 했다. 일부 어머니들은 ‘기러기 엄마’가 되기도 했고, ‘원정출산’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 경제적 능력이 못 되는 어머니들은 ‘우골탑’ 대신 ‘모골탑’을 쌓았다. 많은 어머니들이 극성 엄마, 속물 엄마, 부패 엄마 노릇을 불사했다.” 문제는 이렇게 험난한 어머니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말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강 교수는 이를 일러 “모두가 희생자요 모두가 불만인 체제”라고 한다. 비극은 이 체제의 덫을 벗어날 속시원한 방도를 누구도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진보진영을 향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투쟁의 틀을 벗어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라”고 주문한다. “당장 어머니들의 육아 부담을 제도적으로 덜어주는 게 백날 ‘신자유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극복책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머니가 투사가 되어야만 하는 잔혹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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