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혜경 글·사진/ 새로운 사람들
‘사실’은 세상을 뒤엎거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의 근본이다. 삶이라는 거대한 ‘사실’은 이미 그 자체로 문학이고 혁명이다. <가족>은 그 사실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다. 서울예술대 사진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지은이가 3년여에 걸친 가족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고 여기에 글을 입혔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암 투병이라는 ‘사실’ 앞에 섰다. 2001년 봄, 어머니는 담도암 선고를 받았다.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 어린 남동생을 보살피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맏딸인 지은이는 사진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사진기로 흐르는 눈물을 가렸다. 2003년 여름 어머니가 끝내 돌아가시고, 그 뒤 1년 동안 다른 가족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일궈 가는데 익숙해질 때까지, 그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
지은이의 표현처럼, “빨간 불이 켜졌지만, 파란불이 켜지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가족들은 평온을 지켰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진 어머니가 털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문 아버지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밤하늘을 바라 본다. 남동생은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런 표정으로 엄마 약을 살 돈을 모으고 있다. 여동생은 엄마의 영정 앞에서 차라리 웃어 본다.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무덤에서 잡초를 뽑고 계신다.
이 사진들은 “어머니가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시공을 넘어 만나고 있는 것”이라, 그는 믿는다. 어머니를 보내고 난 지금, “울지 않았지만, 웃는 일 역시 힘들었던” 시간은 계속 되고 있다. 지은이는 장차의 시간을 쉽게 장밋빛으로 덧칠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하늘을 올려다 볼 뿐이다.
코 끝이 시큰해지는 감동 때문에 놓치기 쉬운 두 가지가 이 책에 있다. 갓 스물을 넘긴 이 사진 작가의 프레임 속에서 세상은 참 담백하여 더욱 애잔하다. 삶을 관조하는 그 시선의 깊이도 만만치 않다. ‘사실’을 더욱 빛나게 하는 힘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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