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만복사저포기>나 <원생몽유록>, <운영전>을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임치균(45)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세 가지 한문 고전소설을 녹여넣어 <검은 바람>이란 소설책을 냈다. ‘소설 속 소설’이다.
“현재 발굴된 고전소설이 2천종이 넘습니다. 종류만큼이나 내용도 아주 다양하죠. 예를 들어, 비극적인 <운영전>을 패러디해 희극으로 끝낸 <영영전>, 남자주인공이 남장여인한테 끌린다는 <하진양문록>, 동성애를 다룬 <방한림전>은 기존의 고전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는 것들이죠. 그런데 중고교에서는 인물·구성이 상투적이고 우연성이 남발된다는 식으로 고전소설을 가르쳐요. 완전히 70년대입니다.”
뒤쳐진 교육에 의해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춘향전>, <심청전>에서 생각이 멈춰있다는 것이다. 이런 얄궂은 현상이 임 교수가 소설을 쓴 까닭이다. 고전소설이 생각처럼 재미없고 뒤떨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는 것. 20여년 동안 고전소설을 연구한 임 교수는 3년 전 고전소설의 대중화 방안을 두고 논문을 쓰다가 작품를 구상하게 되었고 미국에 연구교수로 가 있는 동안 완성했다.
40살의 벼슬아치인 ‘나’의 집에 젊은 선비 내외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젊은이와 대화를 하면서 임금이 <삼국지>를 읽은 것을 문제삼은 기대승의 상소가 화제가 되어 나는 <만복사저포기> 필사본을 읽게 된다. 관심은 확대되어 <원생몽유록>에 이른다. 이어 젊은이가 창작한 <수성궁몽유록>을 받아 읽고는 이를 필사한 뒤 <운영전>이라 이름을 붙이고 원본을 찢는다. 자신의 작품으로 바꿔치려는 욕망이 동한 것. 죽음에 임박해 지은이가 젊은이임을 고백하지만 소리가 안들려 <운영전>이 작자미상으로 남는다는 내용이다.
고전소설 연구하다 재미있게 재창작해 고전의 대중화 겨냥
세가지 한문 소설을 녹여 ‘소설속 소설’ 지어
이러한 이야기 가운데 <만복사저포기>와 <운영전>을 현대어로 번역한 게 완전히 들어있다. 중간중간에 나의 목소리를 빈 작품해설과 ‘패설’과 같은 고전문학 용어설명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양념처럼 든 구비설화의 모티프들과 함께 두 작품을 통째로 읽게 된다. <금오신화>의 나머지 작품과 <원생몽유록>은 축약돼 들어있다.
“고전은 단순히 현대어로 바꾼다고 해서 읽히지 않거든요. <검은 바람> 원고본을 아들이 중3이었을 때 시험삼아 보라고 했더니 재밌다고 읽더군요. 세 작품을 완전히 꿰어 뿌듯해하더라고요.”
그러나 논문을 쓰던 고전 연구자의 머리로 가슴으로 쓴다는 소설을 쓰자니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학문연구와 창작이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임 교수는 고전의 대중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산 임경업 장군을 다음 대상으로 꼽았다. “상감마마 살인사건이옵니다.” 비극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격분한 관객이 패설을 읽어주는 사람을 죽인 정조 때의 실제 사건을 서두로 풀어나가겠다는 포부다.
“고전소설 속에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이 대부분 다뤄져 있습니다. 선입견을 빼고보면 고전소설은 현재태입니다.
임 교수는 이 소설이 젊은 층들이 우리 고전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기자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sk@hani.co.kr
세가지 한문 소설을 녹여 ‘소설속 소설’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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