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무엇인가〉
카를 융 분석심리학 근거해 탐구
‘원시 남성→책임지는 부성’ 진화
“현대 질환은 아버지 부재 때문”
‘원시 남성→책임지는 부성’ 진화
“현대 질환은 아버지 부재 때문”
〈아버지란 무엇인가〉
루이지 조야 지음·이은정 옮김/르네상스·2만원 <아버지란 무엇인가>의 영어판 제목은 ‘역사적·심리학적·문화적 관점에서 본 아버지’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심리학적 관점’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지은이 루이지 조야는 카를 구스타프 융이 설립한 국제분석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분석심리학자다. 그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지은이는 원형·집단무의식 같은 융의 심리학 개념을 근거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서구 사회 집단무의식 안에서 발견되는 아버지 상의 원형을 찾아 서구 문화의 시원으로 들어간 뒤 거기서부터 역사를 밟아 내려온다. 이 책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서구 사회, 나아가 오늘날의 인류 전체가 아버지 상을 잃어버림으로써 거대한 공황 상태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질환을 치유하려면 아버지를 되찾아야 한다. 아버지를 되찾으려면, 아버지가 어디에서 기원했고 그 특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기원과 특성과 변모를 분석심리학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선사시대의 삶 속에서 아버지의 탄생을 추적한다. 지은이의 독특한 관점은 아버지 곧 부성과 남자를 구분하는 데서 발견된다. 여기서 남자가 생물학적 속성이라면, 부성은 사회적·문화적 구성물이다. 남자라고 해서 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파괴적·공격적 충동·욕구에 직접적으로 지배받는다. 반면에 아버지는 충동·욕구를 제어하고 인내·의지·지성으로써 삶을 계획하고 끌어가는 존재다. 책임감이야말로 부성의 핵심 특징이다. 원시 인류가 진화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 이런 특성을 지닌 아버지를 탄생시켰고, 그 탄생은 문명의 출발과 다르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나 문화적 형성물인 아버지는 그 내부에서 원시적 남성성과 다툼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다툼을 신화적 장대함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리스의 트로이 정복을 그린 <일리아스>의 경우, 부성과 남성의 대결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싸움으로 나타난다. 헥토르는 가족을 걱정하고 자식을 염려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반대로 아킬레우스는 남성적 힘의 분출 욕구만을 따르는 거친 전사다. <일리아스>에서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하는데, 지은이는 이 결말을 부성 내부의 남성이 지닌 힘의 파괴성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트로이 함락 후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그린 <오디세이아>도 부성과 남성 사이 대결의 드라마다. 다만 여기서는 오디세우스 내부의 싸움이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인데, 한없이 충동에 이끌리는 오디세우스와 그런 자신을 추슬러 고향에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그 싸움은 거인-괴물 퀴클롭스와 오디세우스의 싸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산 채로 잡아먹는 퀴클롭스가 원시적 남성성을 상징한다면, 지략을 발휘해 퀴클롭스를 제압하고 탈출하는 오디세우스는 부성적 존재를 가리킨다. 오디세우스는 긴 항해를 끝내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아버지의 귀환이며 아버지의 승리다.
그리스 문화의 이런 아버지 승리는 동시에 어머니의 패배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부성은 남성을 제압함으로써 여성도 함께 종속시켜 가부장제를 확립했다. 가부장제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자비로운 여신들>이다. 아버지를 배신한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인 아들 오레스테스가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는데, 판관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오레스테스의 손을 들어준다. 어머니는 “자식의 생산자가 아니라 아버지 씨의 양육자일 뿐”이라는 논리가 재판을 가른 것이다. 이 판결은 서구 문명사에서 어머니의 패배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 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신화적 판결을 과학과 철학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그리스를 이어받은 로마는 가부장제를 법률로 확정한다.
지은이는 이렇게 확립된 아버지의 권위가 곧 저항에 부딪혔다고 말하다. 기독교가 저항의 근거지였다. 기독교는 천상의 신만을 아버지로 섬기고 지상의 아버지를 부정함으로써 부성적 권위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남은 것은 형제 관념과 평등 관념이었는데, 이 힘이 복류하다가 18세기 계몽사상과 프랑스혁명을 통해 분출했다. 또 산업혁명은 아버지들을 공장으로 밀어넣어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고, 우울증 걸린 아버지들은 술에 찌든 불량한 아버지가 되어 남은 권위마저 잃어버렸다. 이때 대중운동이 나타나 무력한 아버지들을 규합하고 국가주의가 등장해 텅 빈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는데, 그 운동의 결합이 파시즘이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지은이는 파시즘이 겉보기에는 가부장적 권위의 발현 같지만, 실은 부성 상실의 반작용이었다고 말한다. 파시즘이 폭력적으로 보여준 부성 상실 문제는 오늘날 더욱 깊은 문화적 질병으로 산재해 있으며, 그 질병을 극복하려면 잃어버린 아버지를 되찾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집단무의식 속의 아버지 향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루이지 조야 지음·이은정 옮김/르네상스·2만원 <아버지란 무엇인가>의 영어판 제목은 ‘역사적·심리학적·문화적 관점에서 본 아버지’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심리학적 관점’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지은이 루이지 조야는 카를 구스타프 융이 설립한 국제분석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분석심리학자다. 그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지은이는 원형·집단무의식 같은 융의 심리학 개념을 근거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서구 사회 집단무의식 안에서 발견되는 아버지 상의 원형을 찾아 서구 문화의 시원으로 들어간 뒤 거기서부터 역사를 밟아 내려온다. 이 책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서구 사회, 나아가 오늘날의 인류 전체가 아버지 상을 잃어버림으로써 거대한 공황 상태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질환을 치유하려면 아버지를 되찾아야 한다. 아버지를 되찾으려면, 아버지가 어디에서 기원했고 그 특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기원과 특성과 변모를 분석심리학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선사시대의 삶 속에서 아버지의 탄생을 추적한다. 지은이의 독특한 관점은 아버지 곧 부성과 남자를 구분하는 데서 발견된다. 여기서 남자가 생물학적 속성이라면, 부성은 사회적·문화적 구성물이다. 남자라고 해서 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파괴적·공격적 충동·욕구에 직접적으로 지배받는다. 반면에 아버지는 충동·욕구를 제어하고 인내·의지·지성으로써 삶을 계획하고 끌어가는 존재다. 책임감이야말로 부성의 핵심 특징이다. 원시 인류가 진화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 이런 특성을 지닌 아버지를 탄생시켰고, 그 탄생은 문명의 출발과 다르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나 문화적 형성물인 아버지는 그 내부에서 원시적 남성성과 다툼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다툼을 신화적 장대함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리스의 트로이 정복을 그린 <일리아스>의 경우, 부성과 남성의 대결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싸움으로 나타난다. 헥토르는 가족을 걱정하고 자식을 염려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반대로 아킬레우스는 남성적 힘의 분출 욕구만을 따르는 거친 전사다. <일리아스>에서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하는데, 지은이는 이 결말을 부성 내부의 남성이 지닌 힘의 파괴성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잃어버린 아버지의 원형을 찾아서
지은이는 이렇게 확립된 아버지의 권위가 곧 저항에 부딪혔다고 말하다. 기독교가 저항의 근거지였다. 기독교는 천상의 신만을 아버지로 섬기고 지상의 아버지를 부정함으로써 부성적 권위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남은 것은 형제 관념과 평등 관념이었는데, 이 힘이 복류하다가 18세기 계몽사상과 프랑스혁명을 통해 분출했다. 또 산업혁명은 아버지들을 공장으로 밀어넣어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고, 우울증 걸린 아버지들은 술에 찌든 불량한 아버지가 되어 남은 권위마저 잃어버렸다. 이때 대중운동이 나타나 무력한 아버지들을 규합하고 국가주의가 등장해 텅 빈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는데, 그 운동의 결합이 파시즘이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지은이는 파시즘이 겉보기에는 가부장적 권위의 발현 같지만, 실은 부성 상실의 반작용이었다고 말한다. 파시즘이 폭력적으로 보여준 부성 상실 문제는 오늘날 더욱 깊은 문화적 질병으로 산재해 있으며, 그 질병을 극복하려면 잃어버린 아버지를 되찾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집단무의식 속의 아버지 향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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