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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보수우익 사상, 커다란 오해”

등록 2009-03-25 18:05수정 2009-03-25 21:02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부)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부)
‘상생적 자유주의’ 펴낸 이근식 교수
국가개입 최소화 등 한계 불구 평등·인권 진보가치 지녀
한국, 집회의 자유 등 막는 다수당 횡포로 자유주의 위기
보수는 오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 냉전의 최전선이자 시장경제의 진열장인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가 감내해야 할 숙명이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엔 반공주의의 동의어였고, 민주화 이후에는 시장지상주의와 등치됐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부)는 1990년대 초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고 자유주의의 ‘정수’를 만난 뒤 20년 가까이 일그러진 한국의 자유주의와 대결해온 ‘자유주의 탈레반’이다. 최근 대중강연 원고를 정리해 <상생적 자유주의>(돌베개)를 내놓은 데 이어,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신자유주의-하이에크, 프리드먼, 뷰캐넌>(기파랑)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주의는 보수우익의 사상이 아닙니다.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은 시장의 압도적 자유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부터 국가 개입의 불가피성과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다만 만인평등과 개인주의, 사상·비판의 자유, 관용 등을 기본 원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요.”

이 교수는 25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보수성’과 ‘진보성’을 동시에 지닌 자유주의의 양면성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사유재산제를 신성불가침의 제도로 간주하고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유산계급의 세계관이 지닌 한계는 명백하지만, 자유·평등·인권 같은 진보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제도화했다는 점은 긍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 교수가 제안하는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구별이다.

“각종 차별 철폐와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법치, 관용 같은 가치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의 영역에 속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찬반이 갈릴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인데, 19세기 후반부터 주기적 공황과 빈부격차 확대를 통해 시장의 실패가 분명히 인식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가 약화됩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자유주의, 질서자유주의, 복지국가 자유주의 등의 갈래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이 교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이념적 좌우를 떠나 인류가 성취한 위대한 자산으로 긍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자유주의를 보수파가 전유하도록 방치한 것은 중대한 실수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진보세력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경우 자유주의에 대한 규정도 달라져야겠지요. 누군가를 ‘자유주의자’라고 할 때는 논란의 대상인 경제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시대 상황을 고려해 가며 신축성 있게 비판적으로 접근해야지요.”

보수주의자들에 대해선 경제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명료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을 내놓았다. 정부가 공평무사하고 전지전능하다는 국가주의자들의 생각만큼이나 시장이 완전하다는 시장지상주의자들의 생각 또한 망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제가 보기엔 엉터리예요. 그들이 추종하는 하이에크나 뷰캐넌은 결코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이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거지 결코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무턱대고 공공복지를 축소하거나 국가 개입을 없애면 자본주의는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20세기 자본주의에서 국가 개입과 자유방임의 흐름이 30년을 주기로 교대해온 전례에 비춰 앞으로 개입주의 시대가 한 세대 남짓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새로운 개입주의가 결코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의 케인스주의와 같은 모습을 띠지는 않겠지요. 이미 한 차례 정부의 실패를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정부 개입의 규모와 강도를 과거보다는 한층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화제를 국내로 돌리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사회·경제 정책에 대해 거침없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자유주의의 위기’라고 했다. 그 이유를 이 교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원리인 ‘법치’의 전도에서 찾았다.

“자유주의 전통에서 법치는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으려고 고안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을 보십시오. 국민의 권리행사를 막는 데 법치의 논리를 동원하고 있어요. 이게 전도가 아니고 뭡니까.”

다수 의석을 앞세운 집권당의 밀어붙이기도 신랄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분들이 존경하는 신자유주의의 원조, 뢰프케와 하이에크가 그랬습니다. 다수당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코뱅 민주주의’, ‘의회만능주의’라고요. 국민이 선거에서 다수의석을 줬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건 자유민주주의자로서의 소양 문제입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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