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선집〉
〈크리슈나무르티 선집〉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채현·김기호 옮김/고요아침·각 권 1만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895~ 1986)는 딱히 규정되지 않는(혹은 경계가 없는) 철학과 명상과 지혜를 생활인들의 일상언어로 설파한 인도 출신의 사상가다. 60권이 넘는 책과 수백개의 육성 테이프가 전해질 정도로 정열적인 집필과 강연 활동을 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만큼 현대인의 영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은 ‘구루’(지혜를 터득한 현자이자 스승)의 지위를 끝내 거부했고, 단 한 명의 제자도 거두지 않았다. 고요아침 출판사가 2005년 초에 시작한 ‘크리슈나무르티 테마 에세이’ 시리즈가 이번에 10~13권을 내면서 4년여 만에 완간됐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방대한 저작과 강연록과 출판물 가운데 주요 주제를 추려낸 기획선집이다. ‘○○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각 권의 분야는 추상과 일상을 넘나든다. 1권부터 차례로 △삶과 죽음 △사랑과 외로움 △두려움 △관계 △마음과 생각 △갈등 △진리 △교육 △배움과 지식 △자유 △신(神) △자연과 환경 △올바른 생계수단 등이 주제 목록에 올랐다. 크리슈나무르티는 13살이 되던 해에 신비주의 종교철학자 단체인 신지학회에 발탁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나, 진리는 ‘길 없는 곳’에 있다며 정형화된 종교와 철학, 조직을 거부한 해체주의자이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인도인뿐 아니라 상당수 독자와 청중들로부터 허무주의·순응주의와 다른 점이 뭐냐는 의구심을 낳았을 법도 하다. 그의 미덕은, 세상 모든 진리와 마찬가지로, 간명한 언어와 일관된 메시지로 ‘비우는 삶’과 ‘보편적 사랑’을 역설한 데 있다. 예컨대, 누구나 자유를 꿈꾸지만, “자유는 요구될 수 없습니다. 자유는 두려움이 없을 때, 여러분 가슴에 사랑이 있을 때 ‘생기는’ 겁니다. 지식으로 불구가 된 마음 혹은 지식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진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 아닙니다.”(<자유에 대하여>) “신을 발견하기 위해선 아무런 신앙이 없어야 한다”는 역설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크리슈나무르티가 지식과 신앙을 경시한 건 아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교조로서의 지식과 믿음의 허구성이다. 그는 “아무런 결론이 없을 때에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믿음, 지지의 한 형태 … 우리는 삶에 대해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결론에 도달하고 그것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들에서 참·거짓을 따지는 게 이미 무의미한 분별심일 게다. 자유는 ‘반작용’이 아니며 ‘대상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메시지를 되씹다 보면, 형이상학적 사유가 문득 어느 지점에서 항상 구체적인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라는 것은 일 때문에 둔감하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일 또는 생활에 대한 저항 때문에 둔감하게 된다”고 갈파한 것은, 욕망과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피안의 세계를 넘보듯 귀거래사를 읊조리는 현대인들에게도 그 자체로 따끔한 죽비소리다. 크리슈나무르티에 관한 책들은 대학생의 코디 소품이나 교양 에세이처럼 가볍기도 하고, 수도자의 명상록처럼 깊기도 하다. 강을 건너려면 배가 필요하고, 강을 건넌 뒤엔 배를 버리면 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채현·김기호 옮김/고요아침·각 권 1만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895~ 1986)는 딱히 규정되지 않는(혹은 경계가 없는) 철학과 명상과 지혜를 생활인들의 일상언어로 설파한 인도 출신의 사상가다. 60권이 넘는 책과 수백개의 육성 테이프가 전해질 정도로 정열적인 집필과 강연 활동을 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만큼 현대인의 영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은 ‘구루’(지혜를 터득한 현자이자 스승)의 지위를 끝내 거부했고, 단 한 명의 제자도 거두지 않았다. 고요아침 출판사가 2005년 초에 시작한 ‘크리슈나무르티 테마 에세이’ 시리즈가 이번에 10~13권을 내면서 4년여 만에 완간됐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방대한 저작과 강연록과 출판물 가운데 주요 주제를 추려낸 기획선집이다. ‘○○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각 권의 분야는 추상과 일상을 넘나든다. 1권부터 차례로 △삶과 죽음 △사랑과 외로움 △두려움 △관계 △마음과 생각 △갈등 △진리 △교육 △배움과 지식 △자유 △신(神) △자연과 환경 △올바른 생계수단 등이 주제 목록에 올랐다. 크리슈나무르티는 13살이 되던 해에 신비주의 종교철학자 단체인 신지학회에 발탁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나, 진리는 ‘길 없는 곳’에 있다며 정형화된 종교와 철학, 조직을 거부한 해체주의자이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인도인뿐 아니라 상당수 독자와 청중들로부터 허무주의·순응주의와 다른 점이 뭐냐는 의구심을 낳았을 법도 하다. 그의 미덕은, 세상 모든 진리와 마찬가지로, 간명한 언어와 일관된 메시지로 ‘비우는 삶’과 ‘보편적 사랑’을 역설한 데 있다. 예컨대, 누구나 자유를 꿈꾸지만, “자유는 요구될 수 없습니다. 자유는 두려움이 없을 때, 여러분 가슴에 사랑이 있을 때 ‘생기는’ 겁니다. 지식으로 불구가 된 마음 혹은 지식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진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 아닙니다.”(<자유에 대하여>) “신을 발견하기 위해선 아무런 신앙이 없어야 한다”는 역설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크리슈나무르티가 지식과 신앙을 경시한 건 아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교조로서의 지식과 믿음의 허구성이다. 그는 “아무런 결론이 없을 때에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믿음, 지지의 한 형태 … 우리는 삶에 대해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결론에 도달하고 그것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들에서 참·거짓을 따지는 게 이미 무의미한 분별심일 게다. 자유는 ‘반작용’이 아니며 ‘대상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메시지를 되씹다 보면, 형이상학적 사유가 문득 어느 지점에서 항상 구체적인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라는 것은 일 때문에 둔감하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일 또는 생활에 대한 저항 때문에 둔감하게 된다”고 갈파한 것은, 욕망과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피안의 세계를 넘보듯 귀거래사를 읊조리는 현대인들에게도 그 자체로 따끔한 죽비소리다. 크리슈나무르티에 관한 책들은 대학생의 코디 소품이나 교양 에세이처럼 가볍기도 하고, 수도자의 명상록처럼 깊기도 하다. 강을 건너려면 배가 필요하고, 강을 건넌 뒤엔 배를 버리면 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