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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금융위기 예언’ 조반니 아리기 조명

등록 2009-01-07 18:57수정 2009-01-08 04:05

조반니 아리기(71·사진)
조반니 아리기(71·사진)
‘장기 20세기’등 저서 잇단 출간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71·사진)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자본주의의 반복되는 호황과 위기를 세계 패권의 순환이란 틀에서 분석한 그의 대표작 <장기 20세기>(그린비 펴냄)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펴냄)가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에 때맞춰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덕분이다.

세계 패권 순환론 틀서
네덜란드·영국·미국 분석
미국 이을 새 패권 중국 지목

미국의 신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1994년 펴낸 <장기 20세기>에서, 아리기는 당시 미국 경제의 부활이 세계 패권의 쇠퇴기에 등장하는 일시적 호황에 불과하며, 머잖아 최종적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앞선 네덜란드·영국 패권 쇠퇴기의 호황 국면과 비교해 제시함으로써 적잖은 파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예언’은 14년이 흐른 지난해 가을 월스트리트발 금융 공황과 더불어 현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아리기는 1960년 밀라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좌파 노동운동과 연계된 ‘그람시 그룹’에서 활동했다. 1979년 미국 뉴욕주립대에 자리를 잡은 뒤에는 ‘세계체제론의 지휘부’ 격인 페르낭브로델센터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78), 안드레 군더 프랑크(1929~2005), 사미르 아민(77)과 함께 ‘세계체제론 4인방’으로 불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세계체제론이 주목을 받았던 1990년대 말에도 월러스틴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고, 10여년이 흐른 최근까지 10권이 넘는 저작과 100여편에 이르는 논문들 가운데 금융화와 미국 패권의 향방과 관련된 몇 개의 단편만 번역됐을 뿐이었다.

최근 백승욱 중앙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 <장기 20세기>는 제목과 달리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장기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점에서 아리기의 작업은 월러스틴이 집필 중인 <근대세계체제> 시리즈와 중첩된다. 다만 세계체제의 팽창과 순환을 설명하면서 월러스틴이 중시하는 콘드라티예프 순환이나 중심-주변부의 수직적 분업 대신 ‘체계적 축적 순환’이라는 개념을 앞세운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리기에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네덜란드 패권기(17~18세기), 영국 패권기(19세기), 미국 패권기(20세기)를 거치며 진화해 왔는데, 각각의 시기는 패권국이 주도하는 독특한 축적체제를 갖는다. 이런 축적체제는 새로 등장한 패권국 안에서 형성돼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뒤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윤율 하락과 체제유지 비용의 증대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새로운 국가-기업 복합체가 주도하는 경쟁력 있는 축적체제로 대체된다.


체계적 축적 순환에 대한 아리기의 분석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든 세계적 축적체제가 최종적 붕괴를 맞기 전 금융부문이 일시적으로 팽창하면서 ‘반짝 호황’을 누린다는 점이다. 축적체제가 활력을 잃게 되면 자본이 과잉축적되면서 생산·유통 부문의 이윤율이 금융수익률보다 하락하고, 유동자본을 얻으려는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그 결과 실물부문의 자본이 금융으로 이탈하면서 두 부문 모두에서 이윤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의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 호황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런 호황은 금융부문의 투기적 활황과 생산부문의 부분적 경쟁 완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기에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분석은 정보기술(IT) 거품과 과열된 주택경기 덕에 지탱되던 미국 금융호황이 최근 파국을 맞은 것에서도 입증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금융팽창이 경쟁력 있는 예비 패권국들로 자본을 이전시키면서 기존 패권국의 몰락을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아리기가 보기에, 18세기와 19세기 금융팽창의 수혜국은 다음 시기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미국으로부터 패권을 넘겨받아 새로운 축적 순환을 주도할 주인공은 누구인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리기는 일본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경제권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새 급속히 성장한 중국 경제로 시선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최근 집필한 <장기 20세기>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아리기는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사이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금융자산을 획득했고, 동아시아와 그 너머에서까지 미국을 대체해 상업적 팽창과 경제 팽창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고 기술한다. 그런데 아리기가 중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외형적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2007년 펴낸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에서 그는 중국의 경제시스템을 사회주의 복지제도에 기반한 ‘노동 집약-에너지 절약적’ 축적체제로 규정하고, 이것을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서구식 축적체제를 대체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미래’로까지 격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아리기의 주장에 대한 서구 좌파학계의 평가는 냉담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지난해 11월 <교수신문>에 소개한 영미권 학자들의 반응은 아리기의 관점이 “초기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은 중국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에 대한 무지”(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에서 비롯된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적 가설”(마크 엘빈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명예교수)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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