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의 풍경 1·2〉
■ 과학이 보편적 지식체계라고요?
〈현대과학의 풍경 1·2〉
“남 에트 입사 스키엔티아 포테스타스 에스트.”(Nam et ipsa scientia potestas est)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것 자체가 힘’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과학(science)이라는 낱말의 뿌리가 앎(scientia)인 탓에 오해는 불가피했다. ‘과학=지식’이라는 등식이 쉬 상식이 된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과학사는 과학이 보편적 지식체계라는 당위에서 벗어나 과학자들의 ‘실행’에 주목했다. 과학의 ‘사회적 무중력’ 상태는 불가능하며, 개별 과학자의 정치·경제·종교적 좌표에 영향받는 활동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피터 보울러(퀸스대 과학사)와 이완 리스 모러스(웨일스대 사학) 교수가 쓴 <현대과학의 풍경>은 이와 같은 최근 경향을 22개 꼭지에 균형 있게 반영했다. 1권은 16~17세기 과학혁명이 진정한 혁명인가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 최근의 인간과학(심리학·인류학·사회학)까지를 되짚는다. 2권에선 종교·전쟁·젠더 등 다양한 주제를 과학사의 관점에서 설명해 특히 눈길을 끈다. 단일한 과학 방법론은 없으며, 과학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정의된 틀 속에서만 객관적 증거에 호소할 수 있다는 게 책의 핵심 전언이다. 대학생·일반인을 독자로 겨냥했고 치밀한 서술이 돋보인다. 김봉국·서민우·홍성욱 책임번역/궁리·1권 2만원, 2권 1만50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곤충아, 그동안 널 너무 몰랐구나
〈벌들의 화두〉
지구상에는 공식 학명을 부여받은 곤충만도 100만종이 넘는다.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의 종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니, 지구는 말 그대로 ‘곤충들의 행성’인 셈이다. <벌들의 화두>는 미국의 여성 곤충생리학자 메이 베렌바움이 쓴 곤충 에세이집이다. 유머와 해학이 녹아 있는 40여편의 짧은 글들이 그 동안 모르거나 오해했던 곤충 세계의 진실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곤충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파리 한 마리가 3개월 새 몇 마리로 번식할 수 있는지와 같은 박물지적 사실을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팝 음악에 등장하는 곤충 이미지가 어떻게 변해왔고, 스파이더맨 같은 ‘벌레 영웅’ 이야기는 얼마나 허술한 생리학적 상식에 기대고 있는지 등 곤충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책 안에 가득하다. 여기에 유용한 실생활 정보는 ‘덤’이다. 예컨대 바캉스의 필수 품목이 된 전자 모기퇴치기의 효능은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사실. 수컷 모기나 천적인 잠자리의 날개소리가 피를 빠는 암컷 모기를 쫓는다는 주장은, 모기가 손바닥에 맞아 터져 죽는 소리나 에프킬라 분무음이 모기를 혼비백산시킨다는 주장만큼이나 학문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최재천 외 옮김/효형출판·1만4000원.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환경재앙 빈국 떠넘긴 ‘방탕의 세기’
〈20세기 환경의 역사〉
“20세기는 기묘한 방탕의 세기였다.” 1900년 16억이었던 세계 인구는 20세기 말 60억으로 4배 늘었다. 그 한 세기 동안 인류는 이전 1000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10배를 썼다. 총생산은 14배 늘었지만 숨가쁜 개발을 감당하느라 지구는 만신창이가 됐다. 미국 조지타운대 역사학과 교수인 지은이 J. R. 맥닐은 지난 100년 동안 인류와 지구 환경 사이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사연들을 ‘환경의 세계사’로 써냈다.
환경 파괴의 피해가 ‘평등’했던 것은 아니다. 부유한 국가는 개발로 얻은 부와 과학기술 발달 덕에 20세기 중반 이후 깨끗한 환경을 누리게 됐다. 가난한 국가들에서는 삼림파괴·사막화·토양침식 등이 계속되고, 전쟁과 빈곤이 계속되는 국가에서는 환경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초엔 식민지배의 약탈이, 냉전시기엔 안보불안이, 독재정권에선 한 몫 챙기려는 탐욕이 지구를 쥐어짰다. 민주화는 다국적기업과 재벌, 정부 등이 조직적으로 은폐했던 심각한 환경문제들을 드러내고,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은이는 미래에 대해 장밋빛 낙관론도 묵시적 비관론도 내놓지 않는다. ‘멸종’할지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게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극단적 비정상 상태가 지속된다면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에게 가장 큰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홍욱희 옮김/에코리브르·3만8000원.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인류 4천년 과학사 ‘큰 상차림’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
과학은 사람과 세계에 대한 끝없는 탐구의 과정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는 인류 4000년의 과학사를 한 상 멋지게 차려놓은 지식의 향연이다. 하늘, 사람의 몸, 물질과 에너지, 생명, 지구와 달, 마음과 행동 등 여섯 개의 주제로 장을 나누고, 각 분야에서 이뤄진 과학 발전의 역사를 소개한다. 천문학 물리학 기하학 생물학 화학 지구과학 심리학 뇌과학 의학 등을 망라한 과학백과사전 격이다. 다루는 분야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고급 뷔페 음식처럼 다양하고 순서에 상관없이 골라 읽을 수 있다. ‘모든 것의 이론들’(Theories for Everything)이란 원제에 걸맞게, 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에서부터, 히포크라테스, 갈릴레이, 뉴턴, 다윈, 제임스 왓슨, 프로이트와 카를 융, 스티븐 호킹, 리처드 파인만 등 과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위인들을 다 만나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지면에 다양한 시각자료를 아끼지 않고 책 전체를 컬러로 맛깔스럽게 편집한 것도 돋보인다. 넘치도록 풍부한 삽화와 사진들은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발명·발견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 같은 생동감을 준다. 수시로 등장하는 과학 연표들도 독자들의 일목요연한 이해를 돕는다. 존 랭곤 외 지음·정영목 옮김/지호·2만8000원.
조일준기자 iljun@hani.co.kr
〈벌들의 화두〉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환경재앙 빈국 떠넘긴 ‘방탕의 세기’
〈20세기 환경의 역사〉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