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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권·시민·계급 ‘개념의 족보’ 한눈에 본다

등록 2008-12-12 19:29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마르셀 뒤샹의 <샘>(왼쪽)과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마르셀 뒤샹의 <샘>(왼쪽)과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책세상 개념사 시리즈 1~5〉
최현·하승우·신진욱·이재유·노명우 지음/책세상·각 권 8500원

현대사회 이해할 핵심어 추적
아방가르드·아나키즘 등 의미
현재 우리의 관점서 해석 시도

인문사회과학 시리즈 ‘우리시대’로 한국 출판계에 ‘문고판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책세상 출판사가 ‘비타 악티바’(Vita Activa·행동하는 삶)란 이름의 개념사 시리즈를 펴냈다.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어를 뽑아낸 뒤 그 개념이 생성되고 변화해온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실천적 의미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풀어내려는 시도다. 개념에 대한 계보학적·지식사회학적 탐색인 셈이다.

‘개념사’라는 방식이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2002년 시작된 도서출판 이후의 ‘비투비21’은 현재 2차분까지 출간된 상태다. 하지만 영국 오픈유니버시티 출판부의 ‘기본개념 시리즈’를 발췌·번역한 것이란 점에서 국내 학자들이 집필하는 비타 악티바 시리즈와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 나온 1차분은 <인권>(최현), <아나키즘>(하승우), <시민>(신진욱), <계급>(이재유), <아방가르드>(노명우) 5권이다. 필자 대부분 진보 성향의 30~40대 소장학자들이다. 개념의 역사를 통해 실천적 의미를 재구성한다는 시리즈의 문제의식은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쓴 <시민>에 명료하게 정리돼 있다.

글쓴이에 따르면 개념은 “만들어진 역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고대 아테네와 로마에서 탄생한 시민이란 개념이 중세와 근대를 거쳐 어떻게 오늘날의 핵심가치로 부상하게 됐는지를 다양한 지성사의 흐름과 정치·사회적 사건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요컨대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정치적 주권자이며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시민의 이념이 보편화되기까지는 구세력에 맞선 근대 시민계급의 선도적 투쟁과 그 이념의 경계를 사회·경제적 평등의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노동계급의 지난한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글쓴이는 하나의 윤리적 요청을 도출해낸다. 신분·계급·성적 한계를 넘어 확장되어온 시민의 이념은 “여전히 시민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또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도 평화롭고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세계 시민사회에 대한 모색”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세상 개념사 시리즈 1~5〉
〈책세상 개념사 시리즈 1~5〉
노명우 아주대 교수가 쓴 <아방가르드>는 형식에서 ‘개념사’보다는 ‘예술의 사회사’에 가깝다. 도전과 성공, 좌절로 이어진 아방가르드 운동의 예술사를, 그것을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의 포괄적 맥락 속에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출현 배경을 혁명과 제국주의 전쟁으로 초래된 정치·사회적 동요와 신기술의 출현이 가져온 예술적 재현의 위기에서 찾는다. 아방가르드는 19세기에 확립된 근대예술의 미학적 이상을 거부하고 저항과 실험을 통해 제도 예술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급진주의자들의 시도였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기 취리히에서 태동해 베를린과 쾰른, 뉴욕을 거쳐 파리로 이어지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핵심을 글쓴이는 반전통과 국제주의, 변혁에 대한 열망 등으로 요약한다. 일상의 기성품을 통해 신격화된 예술의 허구성을 폭로했던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시각적 충격을 통해 불편한 삶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했던 마그리트의 콜라주는 이런 아방가르드의 이상을 구현한 대표적 사례로 인용된다.

하지만 글쓴이의 관심은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성취한 영광보다는 실패에, 도발과 소란을 의도했던 오브제가 ‘거장의 작품’으로 전시되고 판매되는 ‘성공의 역설’에 맞춰져 있다. 그가 볼 때 오늘날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은 ‘시장’이다. ‘새로움’은 한때 아방가르드의 전유물이었지만, ‘유행’이란 이름으로 부단히 신상품을 만들어내는 시장 앞에서 예술의 도발은 과거의 파괴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섣부르게 아방가르드의 종말을 선언하진 않는다. 아방가르드에는 대중문화가 갖지 못한 ‘저항 정신’이란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글쓴이는 2005년 뉴욕의 미술관을 순회하며 벌인 ‘도둑 전시’ 해프닝을 통해 관객과 예술 시스템을 조롱한 거리 예술가 뱅크시에게서 찾는다.

“아방가르드는 죽지 않는다. 뱅크시가 사라지면 또다른 이름의 아방가르드가 나타날 것이다. 누구나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다. 아방가르드는 꿈꾸는 자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되풀이되는 신화다.”

시리즈 2차분은 내년 1월에 나온다. 출판사는 내년 말까지 전체 30권을 완간할 계획이다. 남아 있는 시리즈는 <공화주의> <노동가치> <민족주의> <생태주의> <유토피아> <자본주의> <자유> 등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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