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서울 장충동 충무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2008 다문화가정 어울마당 축제. 오른쪽 사진은 왼쪽을 반전 처리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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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사진)
타자에 대한 존중의 공간속
값싼 노동력 확보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욕망 침입 경계 세계화시대의 보편윤리로 떠오른 ‘다문화주의’에 대해, 정치적 진보성과 이데올로기적 억압성을 동시에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종적·문화적 타자에 대한 존중을 표방하는 다문화주의의 심층에는 값싼 이주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전유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최병두(사진) 대구대 교수는 오는 13~15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5회 동아시아 대안지리학대회를 앞두고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다문화주의는 어떤 현상이나 윤리를 지칭하는 개념이라기보다, 후기자본주의의 자본축적 과정에서 요구되는 문화적 이데올로기”라며 “이런 이중성을 인식해야만 다문화주의가 지닌 해방적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가 볼 때 다문화주의는 자본의 팽창 논리에 따라 상품과 자본, 노동력이 국경을 넘어 대규모로 이동하면서 빚어진 초국적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특히 자본간 경쟁이 극대화된 후기자본주의 단계에선 대규모 비용이 소요되는 생산설비 이전보다 노동력 이주가 촉진된다. 국제 이주는 국가에게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절감 기회를 제공하고, 자본에겐 설비 이전 없이 값싼 인력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윤의 극대화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구촌 곳곳에는 다양한 인종·국적의 노동자가 모여 사는 ‘다문화공간’이 출현한다. 문제는 이런 다문화공간에는 인종·민족 간 마찰 가능성이 상존하고, 그것이 언제든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문화 공간은 내부의 갈등적 긴장을 조절·통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요청하는데, 그 결과 출현한 것이 다문화주의라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다문화주의를 “지구적 자본주의의 공간적 통합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교의”로 규정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최 교수는 다문화주의에 감춰진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의 긍정적 기능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지닌 ‘밝고 희망적인 윤리’를 북돋우기 위해서라도 비판을 통한 ‘이데올로기의 극복’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특히 1970~90년대 지속됐던 다문화 지원 프로그램을 철회하고 억압적인 이민자 통합정책으로 후퇴하고 있는 미국·유럽의 최근 상황을 고려한다면, 담론적 비판을 넘어서는 ‘실천적 개입’이 절실하다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차이·타자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의 요구는 “그것이 비록 자본과 권력의 통제를 위한 이데올로기라 할지라도 시민권의 확장과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최 교수는 다문화공간이 지닌 해방적 잠재력에 주목한다. 인종·계급·성의 차이에 기초한 사회적 배제를 해소하고,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인정의 공간’으로서 가능성이다. 그러나 인정의 공간은 다문화적 이주자들이 섞여 산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단한 개입과 투쟁이 없다면 다문화 공간은 언제라도 초국적 자본과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 교수는 온정주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을 비판한다. 약자에 대한 시혜의 호소를 넘어 소수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인정 투쟁으로 전환할 때에야 문화적 시민권의 확보와 더불어 소득·공공서비스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마이크 더글러스 미국 하와이대 교수는 현대 도시를 다양성과 차이가 조화를 이룬 ‘코스모폴리스’로 전환시키기 위한 공간적 실천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코스모폴리스는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시민적 권리를 인정받는 공간이다. 그는 “일본과 한국, 대만, 홍콩 등에서 나타나는 인구 감소와 실업 증가, 소득 불균형 증대 등의 ‘도시 위기’ 역시 코스모폴리스를 지향하는 공간적 실천을 통해 해결책이 찾아질 수 있다”며 시민사회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한다. ‘탈지구화와 동아시아’라는 주제로 서울대(13·14일)와 서울시립대(15일)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대안지리학대회에는 제이미 펙(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케빈 콕스(미국 오하이오대), 에릭 스윙기도(영국 맨체스터대), 미즈오카 후지오(일본 히토쓰바시대) 교수 등 80여명의 비판적 지리학자들이 참석해 ‘신자유주의 도시화’를 극복할 대안적 공간 프로젝트를 모색하게 된다. (02)2210-5345.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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