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신화-서양이론과 유럽중심주의 비판〉
‘3대륙 탈식민주의’ 제창 로버트 영 저작
사이드 ‘오리엔탈리즘’서 한발 더 나아가
사르트르·포스트구조주의 한계도 검토
사이드 ‘오리엔탈리즘’서 한발 더 나아가
사르트르·포스트구조주의 한계도 검토
〈백색신화-서양이론과 유럽중심주의 비판〉
로버트 제이시(J. C.) 영 지음·김용규 옮김/경성대출판부·2만2000원 로버트 영(뉴욕대 영문학·비교문화학 교수·사진)은 ‘트리콘티넨털(3대륙) 탈식민주의’ 이론을 제창한 이론가다. 3대륙 탈식민주의 이론이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억압받는 서발턴(하위계급·기층민중)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서양의 주류 반체제 이론을 비판하고 그 이론들의 진보적 유산을 3대륙 현실에 맞게 번역해 소화하려는 이론이다. <백색신화>는 영의 이론활동에서 전환점이 된 책이다.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몰두했던 영은 이 책 집필을 계기로 하여 탈식민주의로 이동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은이 자신의 이론적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넘어 탈식민주의 이론의 출현을 알린 저작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호미 바바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은 “탈식민주의 사유의 역사적 계보학을 수립하는 데 의미심장한 기여”를 한 저작이다. 탈식민주의의 이론적 장이 막 형성되고 있던 때 그 장의 형성을 역사적 차원에서 보여준 것이 이 저작인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탈식민주의 이론의 장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서구의 주류 반체제 이론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이어받은 마르크스주의와 그 계승인 사르트르를 비판하고 알튀세르·푸코 같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의 기여와 한계를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다. 이어 이들의 사유를 극복하려 한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론을 탐색한다. 이런 검토 작업에서 중심을 이루는 개념이 ‘유럽중심주의’와 ‘탈식민주의’이다. 유럽 마르크스주의가 유럽 중심주의에 갇혀 있었다면, 사이드 이후 탈식민주의는 이 유럽중심주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이론적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책에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은 1990년 초판이 출간된 뒤 2004년에 재판이 나왔다. 2004년 판에서 지은이는 ‘다시 읽는 <백색신화>’라는 제목으로 긴 서문을 썼다. 한국어판은 이 재판을 옮긴 것이다.
이 책의 토대가 된 것은 사이드의 기념비적 저작 <오리엔탈리즘>(1978)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의 그 어떤 지식도 오리엔탈리즘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는데, 영은 한발 더 나아가 서양의 가장 진보적인 이론들조차 유럽중심주의적 백색신화에 갇혀 있음을 입증한다. 이때 영이 맨 먼저 공략 대상으로 삼는 것이 헤겔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타자를 흡수함으로써 주체를 더 큰 주체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주체-타자 대립을 해소한다. 지은이는 헤겔의 변증법이 19세기 제국주의 기획을 철학적으로 모방한 것이라고 말한다. 타자의 주권을 박탈해 주체에 통합시키는 변증법의 지식 구성 방식이 서구가 비서구를 지리적·경제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흉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의 관념론을 뒤집었을 뿐 유럽중심주의와 공모하는 개념체계의 작동양식을 뒤집지는 못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럽중심주의의 연장이었다. 지은이는 유럽의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모든 인간 현상들을 경제결정론으로 환원시켰으며, 인간의 역사적 과제를 근대성 달성에 귀속시킴으로써 유럽 역사를 모범으로 제시했고, 혁명주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수렴시켰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 담론은 “여성, 인종, 다른 소수집단들, 나아가 식민화되거나 식민화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을 겪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능”을 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화한 것은 미래의 계급투쟁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기 때문에 결국 최선이었다고 한 마르크스의 진단은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유럽중심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지은이는 사르트르가 식민지 해방 투쟁에 동참했지만, 결국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유럽중심주의 한계를 반복했다고 비판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당시 유럽 마르크스주의는 제3세계에 대한 ‘생색내는 온정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제3세계 민중을 대신해 발언하면서 그들을 종국엔 지워버리는 유럽 마르크스주의를 지은이는 이렇게 비판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배세력들이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한계는 알튀세르·푸코·데리다·들뢰즈를 포함한 광의의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됐다. 그리고 그런 이론적 바탕 위에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현했다. 그러나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작동 시스템을 폭로하기는 했지만, 그 시스템을 획일적으로 인식함으로써 비서구 내부의 모순·갈등을 보지 못했다. 이런 한계는 다시 바바와 스피박의 비판을 받았으며, 이들이 등장함으로써 탈식민주의 사유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로버트 제이시(J. C.) 영 지음·김용규 옮김/경성대출판부·2만2000원 로버트 영(뉴욕대 영문학·비교문화학 교수·사진)은 ‘트리콘티넨털(3대륙) 탈식민주의’ 이론을 제창한 이론가다. 3대륙 탈식민주의 이론이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억압받는 서발턴(하위계급·기층민중)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서양의 주류 반체제 이론을 비판하고 그 이론들의 진보적 유산을 3대륙 현실에 맞게 번역해 소화하려는 이론이다. <백색신화>는 영의 이론활동에서 전환점이 된 책이다.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몰두했던 영은 이 책 집필을 계기로 하여 탈식민주의로 이동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은이 자신의 이론적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넘어 탈식민주의 이론의 출현을 알린 저작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호미 바바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은 “탈식민주의 사유의 역사적 계보학을 수립하는 데 의미심장한 기여”를 한 저작이다. 탈식민주의의 이론적 장이 막 형성되고 있던 때 그 장의 형성을 역사적 차원에서 보여준 것이 이 저작인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탈식민주의 이론의 장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서구의 주류 반체제 이론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이어받은 마르크스주의와 그 계승인 사르트르를 비판하고 알튀세르·푸코 같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의 기여와 한계를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다. 이어 이들의 사유를 극복하려 한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론을 탐색한다. 이런 검토 작업에서 중심을 이루는 개념이 ‘유럽중심주의’와 ‘탈식민주의’이다. 유럽 마르크스주의가 유럽 중심주의에 갇혀 있었다면, 사이드 이후 탈식민주의는 이 유럽중심주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이론적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책에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로버트 영 (뉴욕대 영문학·비교문화학 교수)
지은이는 사르트르가 식민지 해방 투쟁에 동참했지만, 결국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유럽중심주의 한계를 반복했다고 비판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당시 유럽 마르크스주의는 제3세계에 대한 ‘생색내는 온정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제3세계 민중을 대신해 발언하면서 그들을 종국엔 지워버리는 유럽 마르크스주의를 지은이는 이렇게 비판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배세력들이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한계는 알튀세르·푸코·데리다·들뢰즈를 포함한 광의의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됐다. 그리고 그런 이론적 바탕 위에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현했다. 그러나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작동 시스템을 폭로하기는 했지만, 그 시스템을 획일적으로 인식함으로써 비서구 내부의 모순·갈등을 보지 못했다. 이런 한계는 다시 바바와 스피박의 비판을 받았으며, 이들이 등장함으로써 탈식민주의 사유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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