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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하이데거와 불교 무엇이 닮았을꼬

등록 2008-09-26 20:49

〈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
〈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
“불변하는 실체 없다”…반실체론이 두 사유 공통점
“불교는 ‘열반’종착지…하이데거엔 목적지가 없어”
〈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
권순홍 지음/길·2만8000원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철학과 불교의 사유 사이에 유사성 또는 일치점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일찍부터 있었다. 하이데거 사유 자체가 선불교와 노장 사상에 젖줄을 대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후년의 하이데거가 중국인 제자와 함께 <노자>를 독일어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하이데거와 ‘동양철학’의 친연성을 방증하는 사례로 거론된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명시적으로 자신의 철학과 불교·도교가 직접 연결돼 있다고 밝힌 적은 없다. 그러기는커녕 하이데거는 중국철학을 폄하하기도 했다. 1966년 <슈피겔>과 한 장문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현대 기술 세계가 발생했던 동일한 장소로부터만 어떤 전환이 준비될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 전환은 선불교나 그 밖의 다른 동양의 세계 경험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하이데거와 불교 또는 동양사상을 겹쳐 읽어보려는 움직임은 줄지 않는다. 그만큼 두 사상 사이에 공통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권순홍 군산대 교수가 쓴 <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도 이런 학문적 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이데거 전공자인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그에게 하이데거와 불교의 접점을 숙고하도록 자극한 것이 김형효 교수의 <하이데거와 마음의 철학>(2000)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은이는 김형효 교수의 책에 대해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을 유식불교의 눈으로 풀이한 최초의 연구서라는 점에서 그 학문적인 가치와 의미가 남다르다”고 공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이 유식불교와 하이데거 사이의 동일성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해석의 과잉’이라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 견강부회를 걷어내고 하이데거와 유식불교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냉정하게 분별함으로써 둘 사이에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작업이 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와 유식불교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하이데거와 불교 무엇이 닮았을꼬
하이데거와 불교 무엇이 닮았을꼬
지은이가 먼저 강조하는 것이 두 사상이 공히 반본질주의·반실재론, 요컨대 반실체론을 사유의 전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서양 형이상학의 근본 가정을 부정하고 해체한 니체 철학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하이데거가 거부하는 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로 대표되는 영혼·실체라는 관념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는 없다. 모든 것이 생성·변전의 흐름 속에 있다. 마찬가지로 유식불교도 자아니 실체니 하는 영원한 동일성을 부정한다. 유식불교는 중관불교와 함께 대승불교의 2대 사상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유식불교는 소승불교의 ‘설일체유부’를 정면으로 비판·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체계를 세웠다. 설일체유부는 세상 만물이 모두 실재하고 있으며, 자성(자아·자기동일성)이 만물에 내재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유식불교는 바로 이 실재론·실체론을 급진적으로 거부한다.

지은이는 이런 전제를 공유하는 하이데거와 유식불교가 ‘마음’이라는 공통지반에서 서로 만난다고 말한다. 유식불교에서 모든 것은 마음의 기능이고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작용해 만물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일 뿐, 그 마음을 떠나면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유식불교는 말한다. 유식불교의 이 마음(아뢰야식)에 해당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근원적 시간’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하이데거는 전기 대표작 <존재와 시간>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모든 존재이해 일반의 가능한 지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논술의 잠정적인 목표다.” 하이데거의 설명을 따르면, 인간 현존재는 시간 안에서 생기하는 존재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절대적 사태를 향해 미리 달려가봄으로써 자신의 존재 전체를 문제 삼는다. 그때 드러나는 것이 존재의 지평인 ‘근원적 시간’이다. 이 시간 안에서 인간 현존재는 그때그때마다 세계와 내적·외적으로 관계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전한다. 끝없는 달라짐의 연속이 현존재다. 현존재는 실체적 동일성이 아니라 개방성이며 차이성이다. 하이데거 철학은 이 끊임없는 생성·변화를 긍정한다.

실체가 따로 없는 차이의 연속이라는 하이데거의 이 지점이 바로 불교의 제행무상·제법무아와 통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와 유식불교의 공통점은 여기서 그친다. 결정적인 것은 유식불교가 종교인 데 반해 하이데거는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중생이 걷는 열반의 길에는 말 그대로 열반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있지만, 현존재가 걷는 본래적인 실존의 길에는 어떠한 목적지도 없다.” 지은이는 하이데거 철학이 불교에 비해 사태를 더 깊숙이 해명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또 결정적으로 삶의 목적에 대해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하이데거 철학의 미흡한 부분임을 암시한다. 모든 것이 변전하고 생멸한다는 것에서 불교는 괴로움을 본다. 아름다움이 스러져 추함으로 흩어질 때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불교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 반면에 하이데거 철학은 차이를 만드는 생성에서 ‘실존의 활력’을 발견한다. “그러나 한 번쯤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정녕 하이데거에게도 ‘차이화’의 사건은 괴로움이 아닌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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