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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신자유주의…‘민주적 시장경제론’ 부활하나

등록 2008-09-24 18:19수정 2008-09-24 19:17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의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적 시장경제론의 복권은 그런 모색의 한 사례다. 지난 19일 한 증권사에서  주식투자자가 증권시세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의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적 시장경제론의 복권은 그런 모색의 한 사례다. 지난 19일 한 증권사에서 주식투자자가 증권시세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0년 만의 귀환이다. 갓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국정철학으로 제시됐으나 시작부터 ‘분식된 시장주의’라는 혐의에 시달렸다. ‘1원=1표’(시장)와 ‘1인=1표’(민주주의)의 상이한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두 시스템이 과연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금융위기속 학계 잇단 학문적 복권론 제기
안정성장 위한 ‘평등+효율’ 결합 필요성 강조

의심은 타당해 보였다. 일국의 경계 안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세계화된 시장의 ‘정글논리’를 제어하기엔 처음부터 힘에 부치는 기색이 역력했던 탓이다.

개방과 탈규제, 국제 표준 확립이라는 시장주의 담론의 융단폭격 앞에서 10여 년에 걸쳐 어렵게 구축한 산업민주주의의 진지들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민주적 시장경제’는 시장에 대한 개입과 조절을 포기한 민간 신자유주의 정부의 정치적 수사로 치부됐다.

시장근본주의의 거센 공세에 밀려 땅바닥을 기던 민주적 시장경제론이 이론적 복권을 시도하고 있다. ‘시장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거듭된 정책 실패와 세계 금융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미국발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던 시장만능 신화에 치명상을 가한 덕분이다.

이달 초 발간된 계간 <역사비평> 가을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특별인터뷰를 통해 민주적 시장경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데 이어, 이번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총대를 멨다. 참여정부 출범에도 깊숙이 관여한 유 교수는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국가의 적절한 개입과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합리적 시장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는 계간 <비평> 가을호에 기고한 ‘민주적 시장경제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논문을 통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며 폄훼된 민주적 시장경제론의 이론적·실천적 가치에 대해 ‘학문적 재심’을 청구하고 나섰다.


유 교수에 따르면 민주적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의 평등이념을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구현한 경제”로, 경제 민주화의 필수 과정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해선 민주주의의 평등과 시장경제의 효율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경제 민주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민주화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저소득층의 소득안정이나 보육·보건·교육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인적자원의 질을 높임으로써 경제성장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발전이 두드러졌던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에 세계경제가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을 기록했다는 점도 경제 민주화와 성장의 선순환 관계를 보증한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문제는 왜 민주적 시장경제를 표방한 정부 아래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역설이 발생했느냐는 것.

유 교수의 진단은 세 가지다. 국가 통제력은 약화되는데 시장의 규율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재벌 중심의 민간권력이 강화됐다는 것이 첫 번째요, 정당정치의 미성숙으로 기득권에 맞서 경제 민주화를 추동할 동력이 미약했다는 점이 두 번째다. 마지막은 1997년 외환위기로 비롯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외부요인이다. 그 결과 민주적 개혁은 후퇴하고 개혁의 무게중심도 신자유주의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유 교수의 평가는 결국 민주적 시장경제론의 이념은 옮았으나 실행 과정에 가해진 주·객관적 제약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상황논리에 기댄 사후 정당화로 비칠 법한 대목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성장 부진보다 양극화”였고 “정말 잃어버린 것은 성장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라는 냉철한 진단은 이 해묵은 담론에 대한 그의 변론에 섣부른 비판을 주저하게 만든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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