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르는 뇌〉
■ 뇌의 기능은 기적 아닌 과학
〈기적을 부르는 뇌〉
근육을 키우고 보이지도 않는 인내력을 기를 순 있어도, 뇌의 역능만큼은 운명지어져 있다는 게 대저 상식이다. 그래서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사람의 뇌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혁명적인 발견에 관한 책이다.” 정신과 의사 노먼 도이지의 <기적을 부르는 뇌>다. 하지만 책은 ‘아인슈타인도 제 뇌의 3%밖에 사용 못했다더라’며 뇌 활용도를 높일 방법만 치켜세우는 ‘약장수’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 몸에 대한 기계론적 유물론, 특히 뇌의 경우 17세기부터 하나의 조립품으로 인식해온 태도에 맞서며 이야기를 심화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이른바 ‘뇌가소성 이론’인데, 여러 사례로 과학적 예증 또한 시도한다. 우뇌만 갖고 태어난 미셸이 언어능력과 같은 좌뇌의 주기능을 스스로 기능토록 하며 “우리는 왼쪽 뇌로 말한다”는 140년짜리 ‘진리’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식이다. 뇌는 여전히 미지의 대상이다. 그래서 뇌와 관련된 어떤 기적이나 우연은 현실이고 과학일 수 있다. 책은 바로 그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노먼 도이지 지음·김미선 옮김/지호·2만3000원.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책 읽을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은 언제나 나를 환영해준다. 내가 ○을 원하는데 ○이 나를 거절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온 문장이다. 동그라미 안에 들어갈 낭만의 주인공은 바로 ‘책’이다. ‘책에 살고 책에 죽는 책벌레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동서고금의 선인들이 뿌린 책과의 ‘염문’과 책에 대한 ‘찬가’가 또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나폴레옹은 말을 탄 채 틈틈이 책을 읽었다. 전쟁터에 나가면서도 책을 한 마차씩 끌고 나갔던 이유다. 명대의 애서가 주대소는 평소에 꼭 갖고 싶었던 책을 얻기 위해 애첩을 내줬다. 조선 후기 과학자 혜강 최한기는 책값으로 재산을 탕진했다.
책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일본 개화기의 문인 모리 오가이는 “태어난 그대로의 얼굴로 죽어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책을 읽으면 깊이 있는 얼굴로 변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아르헨티나의 포스트모더니즘 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천국은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찬양했다. 인류 역사 어느 때보다 많은 문자 정보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유통되는 지금의 세계는, 그렇다면 천국인가? 김삼웅 지음/시대의창·1만5000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 ‘어른’이 들려주는 성장통의 경험
〈굿바이 미스터 하필〉
유년의 안온한 행복이 영영 품에서 떠나가버렸음을 깨닫는 순간 느끼는 상실감을 성장통이라 한다면, <굿바이 미스터 하필>의 ‘나’에겐 열세 살 무렵 이 성장통이 제대로 찾아온다. 어른이 된 ‘나’는 40년 전 열세 살에 앓았던 실어증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 무렵, 여섯 형제를 키우느라 차곡차곡 쌓여가던 빚의 무게에 못 이겨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친척집을 전전하던 ‘나’는 학교까지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피해 무작정 들어간 풀숲에서 너럭바위를 발견하고 아지트로 삼는다. 어느 날 너럭바위 위에 널브러진 노숙자의 죽음을 목격한 뒤부터 ‘나’는 말을 삼키게 된다. 이때부터 소년은 주검의 환영인 ‘미스터 하필’하고만 대화를 나누며 침잠해간다.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로 프랑스 아동청소년 문학상 앵코륍티블 상을 받았던 중견작가는 세상으로부터 숨고만 싶어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낸다. 온전히 죽지 못하고 그저 지워져버린 ‘미스터 하필’과 대화하며, ‘나’는 무지의 아름다움만 지닌 하얀 장미보다 삶과 죽음의 극한을 모두 품어내는 흑장미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김진경 지음/문학동네·9500원.
김일주 기자
■ 사회주의자들의 삶을 복원하다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역사와 대화를 나누는 쉬운 방법은 그 시대의 인물과 만나는 것이다. 최근 <한국사 전(傳)> 등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역사책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역사가 주로 이긴 자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데 반해, 이 책은 진 자들의 조각난 기록을 모았다.
윤자영·김단야·임원근·박헌영·강달영·김철수·고광수·남도부 등 8명은 일제강점기에 조선공산당을 주축으로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벌인 핵심들이었다. 그런데도 박헌영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는 잊혀진 사람들이다. 한국전쟁 이후 수십년 동안 그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사람)들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좇는 일은 불온시됐다. 게다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들이어서 그들에 대한 기록도 기억도 사라져 버렸다.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발품을 팔아 그들의 삶을 추적했다. 보안이 곧 생명이었던 시대 탓에 그들이 직접 남긴 기록이 많지 않아, 모스크바 문서보관소와 일제 검·경의 수사기록, 순사들의 회고록 등이 그림 맞추기의 소재로 사용됐다. 임경석 지음/역사비평사·1만2000원.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굿바이 미스터 하필〉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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