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상가〉
자유주의 사상가 벌린의 ‘뿌리찾기’
게르첸·벨린스키 등 사상가 소환
치열하고 헌신적인 급진성 ‘복원’
게르첸·벨린스키 등 사상가 소환
치열하고 헌신적인 급진성 ‘복원’
〈러시아 사상가〉
이사야 벌린 지음·조준래 옮김/생각의나무·3만2000원 1990년대 초 카를 마르크스 평전이 번역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1909~1997)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97년 <비코와 헤르더> 출간을 빼면, 벌린의 저작은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5년 <낭만주의의 뿌리>가 번역되고 이어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이 옮겨지면서 이 자유주의 사상가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됐다. 정치철학자 로널드 드워킨 등이 쓴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이라는 해설서도 뒤이어 출간됐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 <러시아 사상가>가 출간됨으로써 벌린 번역서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벌린의 관심 분야는 드넓게 펼쳐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러시아 사상의 흐름은 집요한 천착의 대상이었다. 그 자신이 어린 시절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뒤 영국에 정착한 사람이어서, 자기 존재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표출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러시아 사상가>에서 그 끈질긴 관심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벌린이 쓴 글들 가운데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사상에 관한 에세이 10편을 뽑아 엮은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사상 구조를 분석한 유명한 논문 ‘고슴도치와 여우’를 비롯해 알렉산드르 게르첸, 미하일 바쿠닌, 비사리온 벨린스키, 이반 투르게네프 같은 19세기 문학가·혁명가들의 사상을 살핀 글들이 여기에 묶였다. 벌린의 유려한 문체와 뛰어난 통찰이 곳곳에서 빛난다. 이 에세이들에서 벌린이 예민한 촉수로 추적하는 것은 19세기 러시아 사상의 그 독특한 성격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그리고 그 긴 흐름 속에서 일관성 있게 지속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벌린이 특별히 주목하는 시간은 1848년이다. 이 해에 서유럽에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온 유럽을 태우던 그 혁명의 불길은 러시아를 비껴갔다. 이 유럽의 변방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르 체제의 질식할 것 같은 폭압이 어떤 혁명적 분출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뚜렷한 혁명 조직도 없었고 민중 운동도 없었다. 벌린은 60년 뒤에 터진 1905년 혁명이 뒤늦게 찾아온 러시아판 1848년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 60년의 지체야말로 러시아 사상의 풍경을 독특하게 채색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 혁명운동이 없었다 해서 혁명사상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벌린은 1848년을 앞둔 10년 동안 새로운 사상의 조류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서유럽의 선진 지식을 광포하게 흡수했던 러시아의 지식인들이 이 시기에 나름의 독자적 사상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지식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벨린스키, 투르게네프, 바쿠닌, 게르첸 들이었다. 이들의 대표자였던 비평가 벨린스키가 창안한 ‘사회비평’은 이 시기 지식인들의 정신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다. 문학 작품을 삶 또는 사회와 분리시키지 않은 채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이 사회비평이었다.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과 다름없이 분석됐고, 그들을 평가하면서 윤리적 목적이 최우선의 자리에 놓였다. 소설관이 곧 인생관이었고 미학적 목표는 윤리적 목표와 겹쳐졌다. 바로 여기서 19세기 러시아에 고유한 급진적 지식인 곧 ‘인텔리겐치아’가 태어났다고 벌린은 말한다. “인텔리겐치아의 개념을 지식인의 개념과 혼동해선 안 된다. 인텔리겐치아 지식인들은 이념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 어떤 것으로 서로 결집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기독교 경전처럼 어떤 특정한 생활태도를 전파하기 위해 헌신하는, 환속한 사제라든지 종파의 지도자에 가까운 존재로 여겼다.”
이렇게 탄생한 인텔리겐치아의 후예들이 19세기 후반 내내 그리고 20세기 러시아 혁명 때까지 이어진 허무주의자·인민주의자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혁명가들이었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들의 고뇌는 톨스토이의 사상에까지 스며들었는데, 톨스토이 자신도 평생토록 ‘저주받은 질문’을 품고 살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 ” 모든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들이 반드시 답하지 않으면 안 됐던 이 질문은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의 소설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팸플릿으로 변주됐다.
벌린이 이 책에서 특별한 호감을 품고 분석하는 사람이 게르첸이다. 게르첸은 1세대 인텔리겐치아였고, 러시아 인민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다. “열세 살 이후로 나는 하나의 사상만을 섬겼고, 하나의 군기 아래서 행군했다. 그것은 강요된 모든 권위에 대한 투쟁이자, 온갖 종류의 자유의 박탈에 맞서는 저항이었다.” 벌린은 게르첸이 이렇게 신념 굳은 사람이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정치적 독재뿐만 아니라 사상의 독재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비타협적으로 옹호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한다. 자유사상가 벌린의 이미지가 게르첸에 대한 묘사에 그대로 투영돼 있는 셈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이사야 벌린 지음·조준래 옮김/생각의나무·3만2000원 1990년대 초 카를 마르크스 평전이 번역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1909~1997)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97년 <비코와 헤르더> 출간을 빼면, 벌린의 저작은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5년 <낭만주의의 뿌리>가 번역되고 이어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이 옮겨지면서 이 자유주의 사상가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됐다. 정치철학자 로널드 드워킨 등이 쓴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이라는 해설서도 뒤이어 출간됐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 <러시아 사상가>가 출간됨으로써 벌린 번역서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벌린의 관심 분야는 드넓게 펼쳐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러시아 사상의 흐름은 집요한 천착의 대상이었다. 그 자신이 어린 시절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뒤 영국에 정착한 사람이어서, 자기 존재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표출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러시아 사상가>에서 그 끈질긴 관심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벌린이 쓴 글들 가운데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사상에 관한 에세이 10편을 뽑아 엮은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사상 구조를 분석한 유명한 논문 ‘고슴도치와 여우’를 비롯해 알렉산드르 게르첸, 미하일 바쿠닌, 비사리온 벨린스키, 이반 투르게네프 같은 19세기 문학가·혁명가들의 사상을 살핀 글들이 여기에 묶였다. 벌린의 유려한 문체와 뛰어난 통찰이 곳곳에서 빛난다. 이 에세이들에서 벌린이 예민한 촉수로 추적하는 것은 19세기 러시아 사상의 그 독특한 성격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그리고 그 긴 흐름 속에서 일관성 있게 지속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벌린이 특별히 주목하는 시간은 1848년이다. 이 해에 서유럽에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온 유럽을 태우던 그 혁명의 불길은 러시아를 비껴갔다. 이 유럽의 변방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르 체제의 질식할 것 같은 폭압이 어떤 혁명적 분출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뚜렷한 혁명 조직도 없었고 민중 운동도 없었다. 벌린은 60년 뒤에 터진 1905년 혁명이 뒤늦게 찾아온 러시아판 1848년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 60년의 지체야말로 러시아 사상의 풍경을 독특하게 채색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 혁명운동이 없었다 해서 혁명사상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벌린은 1848년을 앞둔 10년 동안 새로운 사상의 조류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서유럽의 선진 지식을 광포하게 흡수했던 러시아의 지식인들이 이 시기에 나름의 독자적 사상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잡지 <동시대인> 기고가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톨스토이, 그리고로비치, 오스트롭스키, 투르게네프. 생각의나무 제공
벌린이 이 책에서 특별한 호감을 품고 분석하는 사람이 게르첸이다. 게르첸은 1세대 인텔리겐치아였고, 러시아 인민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다. “열세 살 이후로 나는 하나의 사상만을 섬겼고, 하나의 군기 아래서 행군했다. 그것은 강요된 모든 권위에 대한 투쟁이자, 온갖 종류의 자유의 박탈에 맞서는 저항이었다.” 벌린은 게르첸이 이렇게 신념 굳은 사람이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정치적 독재뿐만 아니라 사상의 독재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비타협적으로 옹호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한다. 자유사상가 벌린의 이미지가 게르첸에 대한 묘사에 그대로 투영돼 있는 셈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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