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두 진보정당의 시대’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왼쪽은 지난 4일,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오른쪽은 지난 17일 민주노동당의 천영세 대표 등 지도부가 국회에서 정부의 민생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강창광 기자 khan@hani.co.kr
2008년의 정치 지형을 거론할 때 ‘두 진보정당 시대’의 개막을 빼놓을 수 없다. 원내 진출 여부를 기준으로 삼으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위상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최근 촛불정국에서 드러났듯이 진보신당 역시 정치적 실체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두 정당은 정파 갈등과 분당, 그리고 지난 총선의 지지부진까지 나란히 경험했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은 촛불집회 단상에 올라가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었다. 진보신당은 두 달여의 촛불집회를 생중계하고 현장토론회를 여는 등 시민들과 함께 호흡했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정국에서 두 진보정당의 위상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최근 발행된 계간 <진보평론>과 반년간지 <기억과 전망>은 진보정당 문제를 다룬 논문을 여러 편 실었다. 대체로 보아 <진보평론>은 운동 정치를 확장하자고 제안했고, <기억과 전망>은 고질적인 정파주의를 넘어서자고 말했다. 그 언어의 대부분은 아직까지 옛 운동권의 그것과 닮았고, 현실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역시 분명치 않지만 각 논자들의 글을 통해 진보정당 운동이 처한 상황의 일면을 볼 수 있다. 그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운동이 곧 정치’ 확장해야 상당수 학자들은 최근 촛불집회의 민심을 수렴하는 방안으로 ‘제도화’를 든다. 거리의 정치도 의미가 있지만 제도의 정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운동과 제도정치를 대립시키는 것은 진보와 무관한 발상이다. (운동과 제도정치를 구분하는 이분법은) 대중이 자기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왜소하게 만들거나 부정한다. (이는) 대중의 자발적이고 전복적인 성격을 제거하려는 보수정치의 또다른 행태다. 운동이 정치다.” 계간 <진보평론>에서 이 교수는 “(제도정치의 밖에 있건 안에 있건) 대중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기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계간 ‘진보평론’
“이분법적 구분, 보수의 행태” 지적
대중 연대로 ‘강한 민주주의’ 지향 정당 체제를 중시하는 주류 정치학과는 달리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상당수가 이처럼 ‘운동 정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이 민주주의로 가는 ‘하나의 우회로’라고 분석한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이후 곧바로 민주화로 직행하지 못하고 신군부 정권이라는 우회로로 들어섰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 사회도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가기 직전에 신우파 정권의 시대를 맞았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런 우회로에서 우리는 도약의 동력을 갖게 된다”고 썼다. “(민주정부 아래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신우파 정권 아래서는 (그런 투쟁이) 대중에게 다가갈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운동 정치의 복원이 진보정당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시각은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팀장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진보신당을 대표하는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데, 분당 이전 옛 민주노동당의 실패가 “‘거대한 소수 전략’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의회 안에서 소수 의석을 차지하더라도 광범위한 대중운동에 기초해 강력한 정치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거대한 소수전략’이었다. 그러나 원내 진출 이후 대중운동은 사그라들었고, 그 결과 민주노동당의 실험이 성공할 수 없었다고 장 팀장은 분석한다. 그는 반년간 <기억과 전망>에도 비슷한 주제의 글을 썼는데, “대중이 연대조직과 사회운동을 통해 강하게 무장하여 기존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인민 주권을 행사하는 ‘강한 민주주의’”를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정파투쟁 넘어 연대로! 계간 <진보평론>은 진보신당과 급진좌파 정치세력의 목소리를 주로 담았다. 반년간 <기억과 전망>에는 이들과 다소 거리를 두면서 1990년대 이후 진보정당의 내부 흐름을 상세히 분석해 소개한 글이 실렸다. 운동정치의 복원을 말하는 <진보평론> 필자들의 주장과 비교하여 검토할 만하다. 김보현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진보정당 세력의 ‘내부정치’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 20년에 걸친 진보정당 운동이 ‘지체된 성장’이었다고 평가한다. “일정한 가능성을 확인해주었지만, 더 많은 긍정적 생성물을 제공해주기를 응원했던 사람들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는 것이다. 그 핵심 원인은 ‘연대의 결여’다. 그가 말하는 연대의 결여란 “당내 권력을 키우려는 계산을 대전제로 하고 상대를 자신의 이념으로 흡수하여 마침내 정당을 장악하려는 구상에서 비롯된 ‘도구주의적 제휴’”다. 연대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장악하려는 내부 투쟁에만 골몰했다는 이야기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은 ‘국민승리 21’이다. 진보정당추진연합(훗날 평등파)과 전국연합(훗날 자주파)이 연대해 97년 만들었다. 두 조직은 “공통성이 많았다기보다는 … 반년간 ‘기억과 전망’
지난 20년간 연대결여로 지체성장
정당 장악 골몰 대중기대 못미쳐 운동단체들이 자연사할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손을 잡았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 내부 갈등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자주파는 특정 지구당에 전략적으로 자기 정파 소속 당원들을 가입시키는 등의 활동을 통해 배타적으로 당을 장악하려 했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그러나 평등파 역시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91년, 평등파는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당시 민중당과의 제휴를 추진했다. 평등파는 민중당 내부에 비밀 당원을 심고, 김문수·이재오 등 기존 지도부의 사퇴를 압박하면서 연대가 아닌 ‘당 장악’을 시도했다. 결국 연합은 성사되지 못했고, 민중당의 기존 세력은 한나라당에 입당해 버렸다. 김 교수는 “1991년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가 민중당을 대상으로 꿈꿨던 야망을, 다른 주체(자주파)가 다른 정당(민주노동당)을 대상으로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실현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연대의 결여는 “정파를 초월해 진보정당 운동 내부의 문화적 현상이었음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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