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 정신병자-연쇄살인범 사이의 천재
〈쿠엔틴 타란티노〉
하나같이 온전치 못해 보이는 주인공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화면을 피칠갑하는 영화(<펄프픽션>) 한 편에 1994년 칸은 열광했다. 내 영화가 <귀여운 여인>처럼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길 바라지 말라고,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그 남자 쿠엔틴 타란티노의 출현에 세계는 ‘천재인가, 싸구려 취향의 대변자인가’ 논쟁을 시작했다.
영화평론가 출신 지은이는 불과 10여년 만에 ‘영화계의 이단아’에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타란티노의 ‘정체성’ 탐방에 나선다. 무려 80여명에 이르는 타란티노의 주변 인물이 전하는 얘기는 타란티노의 각진 얼굴만큼이나 다면체적인 그의 삶을 보여준다.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연쇄 살인범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의붓아버지의 발언처럼 ‘괴짜’ 그 자체였고, 필름에서 비디오로 넘어오는 영화 관람의 역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할리우드 키드’다. 학교를 중퇴하고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살아가던 그가 할리우드 신데렐라로 떠오르기까지의 얘기는 그 자체만으로 흥미진진하다. 그의 영화세계와 심리 상태, 주위 인맥까지 두루 살펴보고, 작품 자체에 대한 분석과 제작 뒷이야기까지 들려주는 덕분에 400여쪽 책장이 지루할 새 없이 넘어간다. 자미 버나드 지음·김정혜 옮김/나무이야기·2만원.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그곳’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지치고 힘들 때 사람들은 위안받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그렇다고 그곳이 항상 푸근하게 어깨를 다독여주는 곳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외롭고 혼자라는 느낌이 더욱 절절해지는 곳일 수 있다.
이 책은 소설가 박상우가 그렇게 떠나는 여행기다. 맨발로 걷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가는 대관령 산마루, 온전한 시원의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양양 조산리 앞바다, 짙은 안개가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만항재 등에서 글쓴이는 새로운 충전을 준비한다.
글쓴이가 이런 곳에서 만나는 것은 풍광만이 아니다. 한때 교사로 근무했던 탄광촌 생활을 떠올리기도 하고, 고교 시절 아무 곡절 없이 집을 떠났던 가출의 기억도, 또 어린 시절 한 꼬마와의 벼락 치듯 다가왔던 사랑과 이별의 가슴 여린 세레나데도 되새긴다.
곳곳에 서리서리 얽힌 역사의 흔적도 더듬어 낸다. 적막한 산사에서 고승과 부처, 보살들의 옛이야기를 길어 올리며, 김삿갓 계곡에서는 김병연의 방랑 생활을 곱씹어 본다. 단종과 그의 비 정순왕후의 애달픈 사연을 만난 청령포에서는 뜻밖에 좌절과 불행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를 찾아낸다.
글쓴이는 1988년 문단에 데뷔했으며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상우 지음/시작·1만2천원.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 참평등 꿈꾸는 노석학의 ‘진실찾기’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하워드 진은 <미국 민중사> <오만의 제국> 등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다. 이 책은 하워드 진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 영어권 국가에 방송되는 얼터너티브 라디오와 한 여덟 번의 인터뷰를 모아 엮었다.
주제는 미국 정부의 전쟁 도발의 역사와 배경에서부터, 시민불복종 운동과 반전 논리, 사회변화를 위한 예술가들의 역할,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국경 없는 세계의 꿈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그러나 전체를 관통하는 그의 문제의식과 주장은 명료하고 단호하다.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에게 정확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미국인이 미국의 팽창주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라크 전쟁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란 믿음도 진실의 힘에 기초한다. 그에게 “기억, 즉 역사는 과거의 거짓말과 속임수를 적발하는 수단이며, 겉으로는 무력해 보이는 국민이 권력을 쥔 지배계급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다. 그는 “모든 인류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세계,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진정한 권리장전이 구현되는 세계”를 꿈꾼다. 올해로 86살이 된 노석학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책의 출간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데이비드 바사미언 인터뷰·강주헌 옮김/랜덤하우스·1만2800원. 조일준 기자
■ 오스만으로 본 이슬람 역사 ‘길잡이’
〈오스만 제국사〉
서기 1300년대의 제국들은 대개 오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던 칭기즈칸의 원나라는 한 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아스텍문명은 3세기 뒤, 서아프리카를 누비던 베닌왕국은 4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럽 동부에서 발칸반도와 중동지역에까지 세를 떨쳤던 오스만 제국은 보기 드물게 지난 세기 초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천년제국’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주역,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 빈의 포위 공격, 흑해·지중해의 부동항을 노리는 러시아와의 오랜 대립,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의 씨앗이 된 동방문제 등의 역사에서 보듯이, 오스만 제국의 세계사적 의미는 좀처럼 퇴색하지 않았다.
오스만과 오랜 세월 공존해 온 서방의 유럽인들은, 스스로 갖고 싶은 ‘멋진’ 정체성을 위해 오스만인들을 야만과 잔인함으로 타자화했다. 서방에 만연한 이슬람에 대한 지독한 편견의 역사는 이때 시작됐다. 지은이는 실제 오스만 제국은 다종교 정치체제를 갖춘 관용적 통치의 모범이었다고 강조한다.
이슬람권 역사의 적절한 개설서를 찾기 힘든 국내 상황 속에서 나온 이 책은, ‘오스만 제국’의 시공간적 범주를 벗어난 이야기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한층 깊게 한다. 학계의 후속 작업에 대한 기대가 높은 이유다. 도널드 쿼터트 지음·이은정 옮김/사계절출판사·1만8000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오스만 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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