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관의 살인〉
장르소설 읽기 /
〈암흑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권일영 옮김/한스미디어·각권1만1800원 아야쓰지 유키토가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십각관의 살인>을 발표한 1987년은, 1950년대가 지나면서 등장한 마쓰모토 세이초를 시작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직 대세인 해였다. 트릭과 사건 해결에 중심을 둔 전통적인 추리 소설에 반해, 현실적인 배경과 사회적 구조를 중시하여 사건보다는 인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가 득세를 했다. 1980년대는 그런 사회파도 전성기를 지나 독자들이 다시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던 때이기도 했는데, 아야쓰지의 데뷔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본격 추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야쓰지 유키토의 <암흑관의 살인>은 신본격 미스터리(과거의 본격 미스터리와 구분하여 이렇게 이름이 붙었다)의 시대를 열었던 ‘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관’ 시리즈는 불운의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건축물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암흑관’은 작품의 배경이자 소재로 사건의 해결과 트릭에 중요한 구실을 할 뿐더러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건축물이 지닌 특별한 분위기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왜곡된 삶의 형태와 어우러져 작품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며 때로는 미스터리라기보다 호러나 스릴러를 읽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사실 <암흑관의 살인>은(대부분의 ‘관’ 시리즈가 그렇긴 해도) 트릭이 대단히 치밀하거나 짜임새가 논리적으로 정교한 작품은 아니다. 그가 존경하는 엘러리 퀸이 강조한 ‘독자와의 페어플레이’? 그 부분에 대해서도 딱히 정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200자 원고지 6000장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에 8년이라는 작가의 노력은 충분히 느껴질 만하고, 복잡다단한 사건과 온갖 실마리들을 조목조목 정리하는 배려(여덟 개에 달하는 암흑관의 평면도를 포함해)를 잊지 않고 있지만, 애초에 본격 미스터리가 받았던 비판들―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특징은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리거나 단점이 될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모름지기 본격 추리의 일차적인 매력이란 무엇인가. 윤리나 도덕, 인간과 사회에서 비롯된 고뇌는 일단 뒤로 한 채 사건과 트릭을 앞에 두고 벌이는 순수한 두뇌 싸움 아니던가. 그 싸움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순간을 향해 질주한다. 단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탐정은 드디어 단서들을 잇는 단 하나의 실선을 제시한다. 그리고 선들이 모두 그려졌을 때 나타나는 충격적인 결말! <암흑관의 살>은 ‘관’ 시리즈의 그런 모든 특징이 집합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하기 그지없는 물리적인 배경과 장치, 인물들의 관계와 과거만으로도 작품의 재미를 느낄 만한 작품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련해 놓은 서술 트릭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선물이다. 세 권이라는 육중한 무게 안에는 어떻게 하면 독자를 즐겁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굳이 작가와 두뇌 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작가가 차려놓은 밥상을 받기만 해도 즐거우니까.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와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떠나 코난 도일과 반 다인 같은 고전 추리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임지호/<북스피어> 편집장 joe@booksfear.com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권일영 옮김/한스미디어·각권1만1800원 아야쓰지 유키토가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십각관의 살인>을 발표한 1987년은, 1950년대가 지나면서 등장한 마쓰모토 세이초를 시작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직 대세인 해였다. 트릭과 사건 해결에 중심을 둔 전통적인 추리 소설에 반해, 현실적인 배경과 사회적 구조를 중시하여 사건보다는 인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가 득세를 했다. 1980년대는 그런 사회파도 전성기를 지나 독자들이 다시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던 때이기도 했는데, 아야쓰지의 데뷔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본격 추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야쓰지 유키토의 <암흑관의 살인>은 신본격 미스터리(과거의 본격 미스터리와 구분하여 이렇게 이름이 붙었다)의 시대를 열었던 ‘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관’ 시리즈는 불운의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건축물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암흑관’은 작품의 배경이자 소재로 사건의 해결과 트릭에 중요한 구실을 할 뿐더러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건축물이 지닌 특별한 분위기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왜곡된 삶의 형태와 어우러져 작품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며 때로는 미스터리라기보다 호러나 스릴러를 읽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사실 <암흑관의 살인>은(대부분의 ‘관’ 시리즈가 그렇긴 해도) 트릭이 대단히 치밀하거나 짜임새가 논리적으로 정교한 작품은 아니다. 그가 존경하는 엘러리 퀸이 강조한 ‘독자와의 페어플레이’? 그 부분에 대해서도 딱히 정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200자 원고지 6000장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에 8년이라는 작가의 노력은 충분히 느껴질 만하고, 복잡다단한 사건과 온갖 실마리들을 조목조목 정리하는 배려(여덟 개에 달하는 암흑관의 평면도를 포함해)를 잊지 않고 있지만, 애초에 본격 미스터리가 받았던 비판들―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특징은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리거나 단점이 될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모름지기 본격 추리의 일차적인 매력이란 무엇인가. 윤리나 도덕, 인간과 사회에서 비롯된 고뇌는 일단 뒤로 한 채 사건과 트릭을 앞에 두고 벌이는 순수한 두뇌 싸움 아니던가. 그 싸움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순간을 향해 질주한다. 단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탐정은 드디어 단서들을 잇는 단 하나의 실선을 제시한다. 그리고 선들이 모두 그려졌을 때 나타나는 충격적인 결말! <암흑관의 살>은 ‘관’ 시리즈의 그런 모든 특징이 집합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하기 그지없는 물리적인 배경과 장치, 인물들의 관계와 과거만으로도 작품의 재미를 느낄 만한 작품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련해 놓은 서술 트릭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선물이다. 세 권이라는 육중한 무게 안에는 어떻게 하면 독자를 즐겁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굳이 작가와 두뇌 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작가가 차려놓은 밥상을 받기만 해도 즐거우니까.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와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떠나 코난 도일과 반 다인 같은 고전 추리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임지호/<북스피어> 편집장 joe@booksfe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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