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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운 오리 새끼’ 속에도 철학이 숨어있네

등록 2007-10-19 22:08수정 2007-10-19 22:18

〈철학 정원〉
〈철학 정원〉
사소한일상속 철학 발견 시도한 김용석 교수
동화·영화 등 다양한 고전 속 사유 분석
경쾌하지만 진중하게 현실 적용 시도
〈철학 정원〉 김용석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철학이 놀이간 된 사람이 있다면 철학자 김용석 영산대 교수가 그런 사람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그에게 철학은 유희다. 다만 그 유희는 골방에 갇혀 문자와 씨름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자폐적 유희가 아니다. 그는 세상 사람과 만나고 통하는 철학,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는 철학을 하려고 한다. 그는 철학 대중화의 전선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철학적 사유의 씨앗을 제공하는 것은 가까운 곳에 널려 있어서 언뜻 비철학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전작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에서는 디즈니 에니메이션 영화를 철학적으로 분석했고, <일상의 발견>에서는 우리 주변의 사소한 일상들에서 철학적 발견을 시도했다. <두 글자의 철학>에서는 고통·유혹·희망·행운·안전 같은 익숙한 말들로 철학적 풍경화를 그렸다.

이번에 펴낸 <철학 정원>은 ‘고전’을 사유의 재료로 삼았다. 고전이라는 말이 위압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에 등장한 고전에는 철학·사상·과학의 고전도 있지만, 문학·영화의 고전도 있고, 심지어는 고전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동화의 고전들도 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부터 일리야 프리고진의 과학서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까지 55편의 ‘철학-유희’가 실렸다. 어떤 분야든 지은이는 특유의 경쾌한 논리의 힘으로 작품들을 분석한다.

이 분석 행위를 지은이는 철학 연습 또는 철학 훈련이라고 말한다. 왜 철학적 사고를 연습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는가. 인간과 세상을 심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오해지면 무거워질 것 같지만, 지은이는 ‘무거워지기는커녕 오히려 가벼워진다’고 말한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자유로워진다는 말이다. “자유의 특징이 바로 중력을 어기는 가벼움의 내공 아니겠는가.” 사유의 진중함이야말로 우리 삶의 경쾌함을 보장해준다는 걸 지은이는 확신한다.

지은이의 철학적 통찰이 남다르게 발휘되는 분야는 역시 동화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에서 그 통찰의 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미운 오리새끼>는 흔히 자기성장과 자기실현의 우화로 이해되지만, 지은이는 이 고전 동화를 ‘열림’과 ‘닫힘’의 이야기로 읽어낸다. 오리들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다름’을 받아주지 않는 ‘닫힌 사회’에서 쫓겨나 외딴 농가로 숨어든다. “그곳에는 할머니와 고양이, 암탉이 서로 다른 종족이지만 이해관계 때문에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는 잠자리를 제공하고, 암탉은 알을 낳고, 고양이는 쥐를 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도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작은 집단에 아무런 이득을 제공하지 못하는 미운 오리새끼는 역시 따돌림을 당한다.” 다시 혼자가 된 주인공을 받아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백조 무리다. 백조의 세계야말로 열린 사회인 것 같지만, 실은 그 ‘오리새끼’가 백조였기 때문에 받아주었을 뿐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열린 사회의 적들’만 찾아내는 관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닫힌 사회의 친구들’, 다시 말해 ‘끼리끼리 친구인 사회’의 폐쇄성을 고민해보자고 말한다. “이 세상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사회는 ‘우리’라는 이름의 닫힌 사회다. 이들은 백조의 무리가 백조를 받아준 것처럼, 자신들의 동일성이 요구하는 ‘우리’의 조건에 맞는 자에게만 열린 사회다.”


‘미운 오리 새끼’ 속에도 철학이 숨어있네
‘미운 오리 새끼’ 속에도 철학이 숨어있네

‘철학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오슨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을 같이 보자고 권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케인은 죽어가면서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긴다. 도대체 무슨 뜻인가. 영화는 그 최후의 말이 지닌 의미를 찾아가는 기자의 눈으로 케인의 삶을 복원한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서도 기자는 ‘로즈버드’의 의미를 밝혀내지 못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 과정을 함께 겪으며 케인이라는 인간의 복잡한 세계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로즈버드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화두’다. 그 화두가 최종적으로는 무의미하다 해도, 그 화두를 붙들고 사유하는 과정에서 삶을 풍부하게 이해하게 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철학을 전 존재를 걸고 실천하는 사람도 이 책에 등장한다.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가 외부의 적과 벌인 싸움의 객관적 기록이라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내면의 적과 벌인 싸움의 냉정한 기록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적 원칙을 버리지 않으면서 현실 정치 원칙을 지켜가려고 자기자신과 사투를 벌인 사람이다. 그 싸움을 아우렐리우스는 ‘판크라티온’(온몸으로 싸우는 격투기)에 비유했다. “너의 기본 원칙을 적용할 때는 판크라티온 선수처럼 해야지, 검투사처럼 해서는 안 된다. 검투사는 사용하던 칼을 잃으면 죽지만, 판크라티온 선수는 항상 주먹을 갖고 있어 그것을 꽉 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익힌 철학적 원칙은 현실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힘, 그 진중함이 삶의 자유를 줄 것이라고 지은이는 넌지시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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