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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어른을 위한 ‘판타지’ 성장 소설

등록 2007-10-12 21:08수정 2007-10-12 21:12

〈나무바다 건너기〉
〈나무바다 건너기〉
장르소설 읽기 /

<나무바다 건너기>
조너선 캐럴 지음·최내현 옮김/북스피어·9500원

고교생 시절 일기장을 들춰보면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가 나온다. 어이, 어른이 된 박상준씨. 소년 시절의 꿈은 얼마나 이루었나? 아직도 순수한 이상을 잘 간직하고 있는지? 원래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스스로 답장을 쓰면서 삶을 돌아보고 분발하려는 요량이었는데, 마지막으로 펼쳐본 게 어느덧 10년도 더 지나버렸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소년 시절의 내가 직접 찾아온다면 어떨까. 이 실현 불가능한 일은 한때 나의 간절한 판타지였다. <나무바다 건너기>는 실로 오랜만에 그런 소원을 일깨우고 나의 사춘기와도 재회하게 해주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은 도시의 경찰서장을 맡고 있는 47살 남성이다. 그런데 10대 시절엔 소문난 악동이었다. 툭하면 싸움질에다 결코 가벼운 장난으로는 봐줄 수 없는 도둑질 등 온갖 행패를 일삼았다.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월남전에 다녀온 뒤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이 사내 주변에서 갑자기 초현실적인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더니, 급기야 소년 시절의 그가 나타난다. 어른이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예우는커녕 고작 이런 삶을 살고 있냐고 빈정거리는 모습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 철부지를 잘 얼러서 당장 눈앞에 닥친 이상한 일들을 수습해야 한다.


에스에프나 판타지, 미스터리 같은 장르소설들의 미덕은 기발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다일까? 물론 그나마도 제대로 이룩해내기 쉬운 게 아니지만, 삶이나 사회에 대한 성찰, 혹은 감동이 없었다면 독특한 생명력을 지탱해오기 힘들었을 터이다. 그런데 장르소설의 대부분은 ‘젊은’, 혹은 연령불명의 막연한 독자를 대상으로 집필되고 소비된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중년층이 절절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에는 “평범한 일상이 나의 정체성인 양 가장하여 지배하려들지는 않는지 반성하라”는 말처럼 새겨둘 만한 구절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자기애와 이타적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기하는 원숙하고 묵직한 중량감이 있다. 어른에 의한, 어른을 위한, 어른의 판타지. 뉴욕타임스가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박상준/월간 〈판타스틱〉 편집주간
박상준/월간 〈판타스틱〉 편집주간
시간여행과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분류학상 이 책은 에스에프나 모던판타지라고 하기엔 뭔가 부자연스러운데, 영미권에서는 80년대 말에 생긴 ‘슬립스트림(slipstream)’이란 용어가 널리 통용된다. (사전적으로는 비행기 프로펠러의 후류를 뜻함) 슬립스트림이란 장르의 핵심은 비현실적인 ‘인지적 부조화’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하며, 흔히 에스에프와 판타지, 그리고 주류문학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계소설’이라는 표현도 종종 쓰지만 그것과도 약간 다르다. <나무바다 건너기>의 작가 조너선 캐럴은 아직 우리나라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폴 오스터나 마가렛 애트우드, 무라카미 하루키 등과 함께 슬립스트림 계열의 작가로 명성이 높다.

박상준/월간 <판타스틱> 편집주간 psj@fantastiq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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