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 나비’
시의 수학적 기호들은 물질적 한계 초월한 삶 의미
식민지시대 탈출하려는 갈망과 순수한 마음이 만나
현실 이념체계 뛰어넘는 우주 중심 ‘무한사상’ 낳아
식민지시대 탈출하려는 갈망과 순수한 마음이 만나
현실 이념체계 뛰어넘는 우주 중심 ‘무한사상’ 낳아
인터뷰 / ‘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 나비’ 펴낸 신범순 교수
이상(1910~1937)의 연작시 〈삼차각설계도〉의 ‘선에 관한 각서1’의 앞 부분은 가로 세로축에 1~10까지의 정수가 나열된 가운데 그 사이를 100개의 원(●)이 채우고 있다. ‘선에 관한 각서3’에는 수식 nPh=n(n-1)(n-2)...(n-h+1)이 등장한다.
이상 시의 난해함은 동원된 수적 기호의 탓도 크다. 그가 식민지 건축기사 양성학교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직후 쓰기 시작한 시들에는 이처럼 알듯 모를듯 차라리 기묘하기까지 한 수적 표현이 난무한다. 이를 두고 〈이상 평전〉을 쓴 고은 시인은 시대에 대한 우월감과 상응한다고 했다. ‘치기의 소산’이나 ‘현학의 정점’이란 수식은 가장 흔한 이상 시의 설명어였다.
신범순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이상의 난해함에 대한 나름의 독법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펴낸 〈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 나비-역사시대의 종말과 제4세대 문명의 꿈〉(현암사)에서 이상은 근대를 초극한 ‘사상가’로 불리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왜 그런가. 시인이 사상가로 대치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시 속의 수학적 기호 때문이다. 이상은 사람의 삶이 물질적 한계를 초월한 것임을 ‘시적인 수학’과 ‘시적인 기하학’을 통해 말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본다. 이 수학과 기학학의 핵심 개념이 ‘무한정수’와 ‘삼차각’ 개념이다. 신 교수가 명명한 ‘무한정수’는 1이라는 같은 정수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역학적으로 ‘-무한대’에서 ‘+무한대’ 걸쳐 있다고 본다. 무한히 많은 1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상이 ‘선에 관한 각서3’에서 x축과 y축 좌표 사이에 점을 찍지 않고 꽉 찬 검은 원을 그려 놓은 것을 신 교수는 ‘무한정수’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데카르트 좌표에서 예컨대 (2·3)은 한 개의 표지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의 좌표 안 2와 3 주변에는 무한한 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2와 3이 만나는 ●은 무한한 쌍들의 존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그의 시 제목으로 쓴 ‘삼차각’은 삼차원 공간의 입체적인 각을 뜻한다. 이상이 근대적 기하학의 추상적 체계를 넘어서기 위해 고안한 용어라는 게 지은이의 해석이다.
왜 무한정수와 삼차각이 이상을 사상가의 반열에 올려놓는가?
“역학(무한정수)과 방위학(삼차각)이 있어야 생명력이 탄생됩니다. (무한정수 개념에 따라) 에너지가 충만해져 극한까지 갈 때 총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같은 수에도 정보량이 각기 다르다. 그 때문에 극대치를 완벽히 채웠을 때 우주의 법칙이나 자연의 창조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를 또한 이상이 선언한 “우주는 멱에 의한 멱에 의한다”의 의미와 연결시킨다. 거듭제곱을 뜻하는 멱은 이상에게는 “곱셈 영역이 무한히 불어나 형성된 하나의 차원”을 뜻한다. 따라서 ‘멱에 의한 멱’은 멱의 차원보다 한층 더 상승된 차원의 세계상과 존재양식을 말하는 것이라고 신 교수는 본다. 하나의 좌표계는 “곱셈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더욱 강력해지고 생명력이 한층 증폭된 계로 변화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상의 사유는 ‘세기의 구원적 사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곱셈이란 서로 각자의 것을 상대편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각자는 물론 그 둘이 함께 영위하는 영역까지 거듭제곱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곱셈적 결합은 냉정하고 이해타산적인 자본주의적 교환과는 다른 “축제적인 뜨거운 교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는 근대 사상을 이상의 사유가 초극했다는 선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삼차각의 3은 완벽한 결합을 상징한다. 이는 에너지의 증폭으로 나타난다. 그는 책에서 3개의 돌이 단단한 구조물로 완성된, 곧 상판의 결합에 의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고인돌과 피라미드 삼각산의 예를 들었다. “삼차각은 새로운 문명 체계를 만드는 기본 구성입니다. 2개가 삼차각적으로 결합할 때 진화가 이뤄집니다.”
이상의 사상을 축약하면 “무한사상”이다. 여기서 ‘무’는 순우리말로 긍정적이고 그 자체로 창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우주를 자신의 정원으로 여기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깃들어 있는 ‘무한정원’과 우주속 무한히 많은 방 하나에 투숙해 전우주를 관람할 수 있는 ‘무한호텔’ 개념이 이 사상의 뼈대이다.
이상의 휴머니즘은 또한 “초검선적 휴머니즘”이다. “광선보다 더 빨리(초검선, 신 교수가 만든 개념) 정보를 수용할 수 있다면 과거의 수 많은 나를 다 끌어 모을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시공간의 나를 끌어 모아서 존재하는 ‘나’입니다.” 이미 주체를 ‘역동적인 체계’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상은 변소에 앉아서 달을 계속 보고 대화했습니다. 식민지 시대 어지러운 세계에 대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강력한 압력이 이상의 순수한 마음과 만나면서 그로 하여금 ‘우주의 정보’를 수신할 수 있도록 했을 겁니다.”
신 교수는 이상 시를 이해하기 위해 현대 물리학과 수학 이론을 두루 섭렵했다. 그는 이상이 후세 누군가 밝혀줄 것으로 기대하며 땅에 묻었던 시의 진의를 자신이 발견해가고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이상의 사유를 근대 사상은 물론 “창조력이 없는” 포스트 모던의 사상을 뛰어넘는 실체로 확정해가고 있는 신 교수의 작업에 저 세상의 이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시인 이상.
“역학(무한정수)과 방위학(삼차각)이 있어야 생명력이 탄생됩니다. (무한정수 개념에 따라) 에너지가 충만해져 극한까지 갈 때 총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같은 수에도 정보량이 각기 다르다. 그 때문에 극대치를 완벽히 채웠을 때 우주의 법칙이나 자연의 창조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를 또한 이상이 선언한 “우주는 멱에 의한 멱에 의한다”의 의미와 연결시킨다. 거듭제곱을 뜻하는 멱은 이상에게는 “곱셈 영역이 무한히 불어나 형성된 하나의 차원”을 뜻한다. 따라서 ‘멱에 의한 멱’은 멱의 차원보다 한층 더 상승된 차원의 세계상과 존재양식을 말하는 것이라고 신 교수는 본다. 하나의 좌표계는 “곱셈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더욱 강력해지고 생명력이 한층 증폭된 계로 변화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상의 사유는 ‘세기의 구원적 사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곱셈이란 서로 각자의 것을 상대편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각자는 물론 그 둘이 함께 영위하는 영역까지 거듭제곱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곱셈적 결합은 냉정하고 이해타산적인 자본주의적 교환과는 다른 “축제적인 뜨거운 교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는 근대 사상을 이상의 사유가 초극했다는 선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삼차각의 3은 완벽한 결합을 상징한다. 이는 에너지의 증폭으로 나타난다. 그는 책에서 3개의 돌이 단단한 구조물로 완성된, 곧 상판의 결합에 의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고인돌과 피라미드 삼각산의 예를 들었다. “삼차각은 새로운 문명 체계를 만드는 기본 구성입니다. 2개가 삼차각적으로 결합할 때 진화가 이뤄집니다.”
신범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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