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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 사이에서<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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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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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78)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연과학자로서는 예외적이게도 ‘반독재 운동’에 몸을 던진 ‘사회 참여’ 지식인이다. 1970년대 유신 정권 아래서 그리고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아래서 그는 반정부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각각 4년씩 교단에서 쫓겨났다. 실험실과 연구실을 빼앗긴 것은 실험화학자로서는 치명적인 박탈이었다. 전공 연구의 길이 막혀버린 셈인데, 그는 이 불운의 시절을 인간과 사회와 과학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성찰로 견뎌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제였는데, 그런 관심은 자신의 삶의 조건에서 비롯된 바 크다. 모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타고난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신앙과 항상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자연과학자라는 모순적 상황이 그를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몰두하게 했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는 1995년부터 10년 가까이 계간 <과학사상>에 이 두 이질적 문제를 주제로 삼아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다. 종교인으로서 과학자의 삶을 살아온 그가 그 갈등과 알력을 해결해보려고 지적으로 투쟁한 과정을 옮겨놓은 것이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이 책에는 500명에 가까운 과학·철학·신학 분야의 학자들과 그들의 저서가 등장한다. 그들의 고민과 발상을 빌려 지은이 자신의 문제를 풀어보려 하는 것인데, 그 문제를 한마디로 줄이면 ‘다윈 이후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등장한 뒤로 ‘진화론 패러다임’은 오늘날 인간 사유의 대전제가 됐는데, 그것은 기독교의 창조론이 설 땅을 잃었다는 뜻이고, 바꿔 말하면 기독교의 오랜 신앙적 기초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신앙인으로 생활한다. 구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신은 질서의 기원이자 진화를 고난으로 수용”
과학이자 신앙인으로서 ‘진화신학’잠정결론 속 ‘대화 통한 만남’ 제시 %%990002%% 지은이는 이 모순적 갈등 상황을 정직하게 돌파해보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과학과 종교를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하거나 둘 가운데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식의 쉬운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 둘 사이의 대립을 인정한 채로 대화와 화해의 지평을 찾아나가는 것이 그의 탐구 자세다. 이 책에서 그는 우주의 시작과 전개에서부터 생물의 탄생과 진화를 거쳐 인류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전 역사를 꼼꼼히 검토하면서 각각의 주제들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논점과 쟁점을 살핀다. 과학의 문제는 철학의 문제로 이어지고 철학의 문제는 다시 종교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의 잠정적 결론은 ‘진화신학’으로 나타난다. 진화신학의 요체는 ‘다윈주의적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진화 속에서 진화와 함께 역사하는 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신은 우주의 탄생 시점에서 ‘질서의 기원’으로 활동하다가 침묵 속으로 들어간 존재가 아니다. 진화는 각각의 생명체 차원에서 보면 고통과 투쟁과 희생을 동반하는데 신은 이 비극을 고난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다.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개방성에 동참하는” 신이 ‘진화신학’에서 말하는 신이다. 이 신은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과학과 대립하지 않고도 삶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부여해주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진화신학을 통해서도 신의 존재와 가치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지은이는 ‘대화를 통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과학과 종교는 결코 완전히 일치할 수도 완전히 결별할 수도 없다. 둘 사이에는 ‘불완전한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한한 대화’만이 이 긴장을 창조적 긴장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결론보다는 그 결론에 이르는 긴 여로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지적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하나의 성취를 보여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과학이자 신앙인으로서 ‘진화신학’잠정결론 속 ‘대화 통한 만남’ 제시 %%990002%% 지은이는 이 모순적 갈등 상황을 정직하게 돌파해보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과학과 종교를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하거나 둘 가운데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식의 쉬운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 둘 사이의 대립을 인정한 채로 대화와 화해의 지평을 찾아나가는 것이 그의 탐구 자세다. 이 책에서 그는 우주의 시작과 전개에서부터 생물의 탄생과 진화를 거쳐 인류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전 역사를 꼼꼼히 검토하면서 각각의 주제들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논점과 쟁점을 살핀다. 과학의 문제는 철학의 문제로 이어지고 철학의 문제는 다시 종교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의 잠정적 결론은 ‘진화신학’으로 나타난다. 진화신학의 요체는 ‘다윈주의적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진화 속에서 진화와 함께 역사하는 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신은 우주의 탄생 시점에서 ‘질서의 기원’으로 활동하다가 침묵 속으로 들어간 존재가 아니다. 진화는 각각의 생명체 차원에서 보면 고통과 투쟁과 희생을 동반하는데 신은 이 비극을 고난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다.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개방성에 동참하는” 신이 ‘진화신학’에서 말하는 신이다. 이 신은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과학과 대립하지 않고도 삶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부여해주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진화신학을 통해서도 신의 존재와 가치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지은이는 ‘대화를 통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과학과 종교는 결코 완전히 일치할 수도 완전히 결별할 수도 없다. 둘 사이에는 ‘불완전한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한한 대화’만이 이 긴장을 창조적 긴장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결론보다는 그 결론에 이르는 긴 여로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지적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하나의 성취를 보여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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