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
권력자·특권층에 복무하기 십상인 법은 강자와 약자의 대립과 투쟁의 산물
민중의 의지·정의에 맞는 운용이 중요
민중의 의지·정의에 맞는 운용이 중요
<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
김욱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6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첫째로,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모든 법률가를 죽이는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폭도 가운데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혁명으로 세상을 뒤엎고 ‘지상낙원’을 만들겠다고 나선 폭도의 입에서 나온 제1성이 ‘법률가를 몰살하자’는 구호다. 억압받는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법률가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원수 중에 원수다. 법은 밥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는 밥그릇마저 빼앗는다. 민중에게 법이 말하는 정의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법은 정의롭다. 그것은 빵을 훔친 죄로 부자와 가난뱅이를 평등하게 처벌한다.” 이 금언은 법적 정의가 부정의의 다른 말일 뿐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부자는 빵을 훔칠 일이 없으므로, 먹을 것 없는 가난뱅이에게만 정의의 칼날이 겨누어진다. 정의로운 법은 있는가. 로마신화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는 흔히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
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죄의 무게를 정확히 달아 칼로써 응징하는 것이 정의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보통 이 여신은 두 눈을 수건으로 가린 모습인데, 눈앞의 사태에 마음이 흐려져 잘못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눈을 가린 유스티치아는 무수한 풍자의 대상이 돼 왔다. 어떤 그림에서 유스티치아는 왼쪽 눈만 가리고 있다. 법적 정의의 편파성을 비꼬는 그림이다. 그런가 하면 ‘눈 감은’ 유스티치아를 ‘눈먼’ 유스티치아로 패러디한 그림도 있다. ‘맹목’의 유스티치아는 사람의 처지를 살피지 않고 기계처럼 칼을 휘두를 뿐이다. 그 결과는 필경 강자의 정의가 되고 말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벌이던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단언이야말로 정의에 대한 위선 없는 규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의, 다시 말해 법은 언제나 강자의 편이기만 한가? 법학자 김욱 서남대 교수가 쓴 <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는 이 질문에 찬찬히 답하는 책이다. 흥미로운 삽화와 논쟁적인 판례, 그리고 법과 관련된 이론의 역사를 두루 살피면서 지은이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법이 지닌 딜레마를 살핀다. 법은 필요악이다. 법은 사악하지만 꼭 필요하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한다. 지은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법의 내적 모순에 주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려고 세 번이나 탈영한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자는 그 효성에 상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한비자는 군법을 어긴 죄를 예외 없이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가 옳은가. 공자를 따르면,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한비자를 따르면, 인정 없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인간성 없는 법은 냉혹하고, 엄격하지 않는 법은 무력하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더 근원적인 모순은 법에 내장된 ‘권력관계’에 있다. 법은 권력자의 의지인가, 아니면 민중의 의지인가.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법을 모두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은이가 보기에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권력자의 의지가 만들어낸 법을 ‘권력의 법’이라 하고 민중의 의지가 만들어낸 법을 ‘민중의 법’이라고 한다면, 현실의 법은 권력의 법과 민중의 법 사이 어디엔가 서 있다. 법은 권력자와 민중의 대립과 투쟁의 산물이다. 민중의 힘이 약하다면 법은 권력자의 의지에 기울 것이고, 반대로 민중의 힘이 강하다면 법을 민중 편으로 끌어올 수 있다. “법이란 모순 없이 하늘나라에서 뚝 떨어진 추상적 규범이 아니다. 법은 ‘권력의 법’과 ‘민중의 법’이라는 대립물의 통일이며, 법 실현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발현되고 지양되는, 살아 숨쉬는 모순적인 규범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법은 권력자나 특권층에게 복무하기 십상이다. 힘없고 돈 없는 민중이 법률에 호소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입법 과정에서 민중의 의지를 관철하는 일이며, 이미 만들어진 법을 민중의 정의에 맞게 운용하는 일이다. 지은이는 ‘민중의 투쟁’만이 법의 진보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김욱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6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첫째로,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모든 법률가를 죽이는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폭도 가운데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혁명으로 세상을 뒤엎고 ‘지상낙원’을 만들겠다고 나선 폭도의 입에서 나온 제1성이 ‘법률가를 몰살하자’는 구호다. 억압받는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법률가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원수 중에 원수다. 법은 밥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는 밥그릇마저 빼앗는다. 민중에게 법이 말하는 정의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법은 정의롭다. 그것은 빵을 훔친 죄로 부자와 가난뱅이를 평등하게 처벌한다.” 이 금언은 법적 정의가 부정의의 다른 말일 뿐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부자는 빵을 훔칠 일이 없으므로, 먹을 것 없는 가난뱅이에게만 정의의 칼날이 겨누어진다. 정의로운 법은 있는가. 로마신화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는 흔히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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