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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죽음조차 삶이 된다, 사랑 그 안에서…

등록 2005-03-25 17:31수정 2005-03-25 17:31

‘한겨레’연재 박범신 소설 ‘나마스테’ 출간

소설가 박범신(59)씨가 <나마스테>(한겨레신문사 펴냄)를 펴냈다. 지난해 벽두부터 <한겨레>에 256회에 거쳐 일일 연재하던 것을 이번에 묶어낸 것이다.

집필 동기에 먼저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한 청년이 달려오는 전철을 향해 부나비처럼 뛰어드는 장면이 텔레비전 9시 뉴스에 그대로 방영됐다. 2003년 11월 11일의 일이다. … 영안실로 찾아갔다. … 너무도 생생해서 도무지 찾아가지 않고 배겨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 31살, 스리랑카의 크리켓 선수였던 다르카였다. 코리안 드림을 품은 자에게 그해 한국의 겨울은 엄혹했다. 4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 근로자는 새로 발효된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에 의해 내몰렸다. 여기저기 죽음의 살풀이가 끊이질 않았다.

이를 두고 신열을 앓았던 작가적 통점이 인간의 보편적 고통을 들여다보고 구원을 갈망하는 거대한 몸짓으로 확대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인간의 상흔은 저마다 달라도 그 깊이는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인공인 네팔 출신 노동자 카밀과 한국 여성 신우가 사랑으로 엮인 이유일 것이다.

신우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와 오빠를 엘에이(LA) 흑인 폭동 사건으로 잃었고, 짧은 결혼은 강요된 섹스와 폭력으로 유린당했다.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아메리칸 드림’은 삶을 통째 벤 날카로운 칼일 뿐이었다. 신우 앞에 나타난 카밀은 그런 점에서 또 다른 ‘신우’다. 그래서 첫 만남은 이렇다. “아주 깊은 눈이었다.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관통해 어디,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가 나를 보았다.”공장에서 다친데다 친구를 찾아 온 마을에서 길을 잃고 밤새 헤매던 카밀이 급기야 신우의 집뜰에서 쓰러졌던 차였다. 운명처럼 둘의 사랑이 깊어지는 건 정말 ‘카르마(운명)’가 존재한 탓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카밀이 의식을 되찾고 신우에게 던진 첫 마디는 “세상이 화안~해요”였고, 그 세상은 그때부터 신우의 것도 된다.


죽음으로 맞선 코리안 드림
유린당한 아메리칸 드림
상처입은 영혼의 운명적 사랑

▲ 후기에서 밝힌 대로 박범신씨는 지난달 25일 여장을 꾸려 네팔 트렉킹에 나섰다. 해발 4천 미터 가량의 마을 판고체에서 에베레스트산 쪽으로 가는 한 지점에서 쉬고 있는데 햇볕이 눈부시다. 박범신씨 제공.
하지만 카르마의 수명은 길지 못한 듯,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에 의한 거센 탄압에 맞서서 투쟁하던 카밀은 다르카가 전철을 향해 뛰어든 것처럼 고층호텔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린다.

치유할 줄 모르는 시대의 분노와 좌절이 수평, 수직선을 타고 종국에 세상 가득 채워지는 셈이다. 이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사랑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사랑은 서로의 카르마가 온전히 엮이는, 마치 ‘나마스테’ 외치면서 머리 위로 올렸다가 고요히 합장하는 두 손을 닮지 않았을까.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행복해지세요’라는 뜻의 이 한마디로부터 시작된다는 우주 안의 모든 소통은 사랑으로 강화된다. 죽음조차 삶이 된다.

카밀과 신우 사이에서 태어난 애린은 2021년 겨울 아버지의 고향, 마르파로 떠난다. 집 마당에서 잠시 꿈을 꿨다. 신우와 카밀을 닮은 나팔꽃이 히말라야의 만년 얼음산이자 지구의 중심,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없다는 카일라스의 준령으로 웅혼하게 뻗어간다. 그리곤 문득 눈을 뜬 애린이 마지막 속삭인다. “(세상이 화안해요…라는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난치지 말아요, 아빠.”

한편 한겨레신문사는 <나마스테> 출간을 기념해 이 책 안의 독자카드를 보낸 이 중 두 사람을 추첨해 작가 박범신씨와 함께하는 네팔기행(4월28일~5월8일)에 참가할 기회를 준다. 4월 12일까지 도착한 엽서에 한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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