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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유를 다시 사유하려는 사유는

등록 2005-03-25 16:38수정 2005-03-25 16:38

 사유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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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란 무엇인가 \\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가 ‘나치 참여’ 전력 때문에 2차대전 종결 뒤 대학에서 쫓겨났다가 4년 만에 복직했다. <사유란 무엇인가>는 복직 후 교단에 다시 선 그가 1951년도 겨울학기와 1952년도 여름학기에 같은 제목으로 행한 연속 강의의 강의록을 묶어 펴낸 책이다. 1966년에 잡지 <슈피겔>과 한 긴 인터뷰에서 그는 “그동안 출간된 저서들 중에서 가장 적게 읽혔지만, 가장 중요한 저서다”라고 이 책을 자체 평가했다. 하이데거 전공자 권순홍 군산대 교수가 꼼꼼한 각주와 해제를 달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에서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의 출발점과 종결점에 놓인 두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프리드리히 니체를 원용해, 서양 근대인들이 ‘사유’라고 지칭해온 것을 근원적으로 다시 사유하려고 한다. 하이데거가 니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그의 사유 안에 서구 형이상학 전체가 응집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서구 형이상학 자체를 완성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사유’라고 말하는 것이 실은 사유가 아니라 단순히 ‘표상작용’(Vor-stellen)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과감한 주장이다. 말의 뿌리를 분석해보면 표상작용이란 ‘앞에’(Vor) ‘세운다’(stellen)는 뜻이다. 무엇을 앞에 세운다는 것인가. 자연과 환경을 비롯한 존재자(존재하는 것) 전체를 끌어다 앞에 세운다는 말이다. 인간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자신이 설정한 규칙과 목표에 짜맞춰 세워놓고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수탈한다. 과학과 기술이 그 표상작용의 한 결과물이다. 근대인이란 말하자면 이 표상작용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존재인데, 이때의 표상은 의지 혹은 의욕과 같은 말이다.

니체는 이 표상작용의 극한 너머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람을 ‘초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볼 때, 니체의 초인은 여전히 근대 안에 머무는 근대의 완성자일 뿐이다. 모든 존재자를 완전히 장악해 자신의 의지를 제약없이 관철하는 것이 초인이라면, 이 초인이야말로 근대의 정점에 선 인간일 뿐이다. 인간이 표상작용에 갇혀 있는 한 근대를 넘어설 수 없다. 여기서 하이데거가 ‘표상’의 대립 개념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사유’다. 근대인은 표상할 뿐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명제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유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서구 사상의 시원에 놓인 고대 그리스 초기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물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기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사유란 모든 존재자들이 들려주는 ‘존재의 소리’를 청취하고 그것을 영접하여 자기 안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그것들이 마음 안에 모여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유가 인간의 본질이라면, 존재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받아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다. 그 사유가 망각 속에 묻혀버리고 근대에 들어와 이성의 단순한 분별작용 혹은 계산능력으로, 다시 말해 표상활동으로 떨어져버렸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사유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이 잃어버린 사유를, 다시 말해 존재의 목소리를 상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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