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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간은 나와 너 만남 속 ‘사이존재’

등록 2007-05-03 18:49수정 2007-05-03 18:57

<인간의 문제> 마르틴 부버 지음·윤석빈 옮김.길 펴냄·1만8000원
<인간의 문제> 마르틴 부버 지음·윤석빈 옮김.길 펴냄·1만8000원
칸트도 헤겔도 대답 못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려
구체적 실존 바탕해 ‘닫힌 서양철학’ 넘어 만남 탐구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 주목한 대화의 철학자

죽기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영국령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인 1948년에 유엔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자,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우리 가족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카이로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그때 우리 집을 접수해 살았던 사람은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였다. 내 집을 빼앗은 사람이 <나와 너>의 책의 저자라는 사실은 그 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

서양과 동양의 ‘잘못된 만남’ ‘착취적 관계’를 파헤친 <오리엔탈리즘>의 지은이가 당혹해했을 법도 하다. 자기 집에 들어앉은 이가 ‘만남의 철학자’ ‘대화의 철학자’로 알려진 노년의 마르틴 부버(1878~1965)였기 때문이다. 부버 자신이 나치 정권에 핍박받고 쫓겨난 망명자였다는 사실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부버에게 ‘나와 너’의 ‘만남’은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필생의 철학적 주제였다. 그때의 만남은 당연히 일방적이거나 착취적이거나 부적절한 만남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참된 만남이었다. 철학자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서로주체성의 이념>에서 서양철학사 전체를 나르시시즘에 갇힌 ‘홀로주체’의 역사였다고 평가하면서, 그 홀로주체의 ‘닫힌 상태’를 넘어 만남을 탐구한 사람으로 부버를 꼽았다. 비록 ‘사이드 일화’를 남기기는 했지만, 부버는 서양철학사와 대결해 그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 예외적인 존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사이드 집 빼앗은 유대인이기도


<인간의 문제>는 그가 젊은 날의 고민을 응집해 1943년에 펴낸 책이다. ‘철학적 인간학’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될 이 책에서 지은이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유명한 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답변인 셈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대답을 내놓기에 앞서 서양철학의 역사가 이 질문에 어떤 식으로 답했는지 먼저 검토한다. 그가 역사를 되짚을 때 사용하는 개념적 탐침이 ‘집이 있는 상태’와 ‘집이 없는 상태’다. 인간은 집이 없는 상태가 돼야 불안과 고독에 젖어 진지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는 것이 부버의 생각이다.

마르틴 부버
마르틴 부버
서양철학사 초기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견고한 철학의 집을 지었던 사람들이다. 당연히 인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실종됐다. 중세 시대엔 ‘신의 집’이 거처였다. 신이 지어준 집이 붕괴한 근대에 들어와 인간학적 질문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칸트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 폭발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칸트조차 이 물음을 던지고 돌아섰을 뿐 대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헤겔은 이성이라는 거대한 체계를 세워 다시 그 물음을 봉쇄했다. 뒤이은 포이어바흐가 이 봉쇄를 뚫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그는 인간을 고립된 개인으로 보지 않고 ‘인간과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으로 보았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이 명제에 머물렀을 뿐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마르크스, 키르케고르, 니체가 나름의 답변을 제시했지만, 지은이가 보기에 그들 또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인식에 이르지 못했다. 부버와 동시대인인 하이데거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했지만, 그의 인간은 자기 안에 갇힌 채로 타자를 향하고 있을 뿐 타자와 만나거나 대화하지 못하는 존재다.

‘사이존재’론 명확한 정립 못해

그들이 모두 인간을 규명하는 데 실패한 것은 인간의 구체적 실존에서 문제를 풀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란, 포이어바흐와 마찬가지로 다른 인간과 더불어 있는 존재다. 부버는 이렇게 언제나 이미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을 두고 ‘사이존재’라고 부른다. 인간이란 말하자면 나와 너의 만남 속에 있는 사이존재다. 나는 다만 나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버는 이 사이존재에서 칸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부버 자신도 여기서 더 나아가 사이존재를 명확히 해명하지는 못했다고 책을 옮긴 윤석빈씨는 평가한다. ‘사이드의 집에 들어앉은 부버’는 부버 철학의 불철저함을 보여주는 일화일지도 모른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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