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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머릿속 실험실’ 상상력이 세상 창조

등록 2007-04-19 16:06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2만5000원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2만5000원
테네시 윌리엄스, 레닌, 아인슈타인…
모든 창조자들은 놀라운 상상력의 소유자
형상화·감정이입 등 13가지 생각도구로
독창적인 생각의 불꽃 발화하는 순간 포착
“나는 젊음의 막바지에 이른 한 여인을 떠올렸다. 그 여인은 창문 옆 의자에 고적하게 앉아 있다. 달빛이 흘러들어와 그 여인의 쓸쓸한 얼굴을 비춘다. 여인 옆에는 결혼할 남자가 서 있다.”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쓰기 전 이런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모든 것은 이 최초의 이미지에서 태어났다. 화려한 삶을 꿈꾸었지만 비참과 퇴락만 남은 여인 블랑슈는 자기가 만든 환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 현실이 허락하지 않은 주목받는 삶을 산다. 이 환상 세계가 깨지면 현실의 삶도 깨질 것이다.

스위스에 망명중이던 혁명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1917년 러시아에서 ‘2월혁명’이 터지자 고국으로 돌아가 ‘4월 테제’를 발표했다. 이 지침에서 그는 붕괴한 차르 체제 대신 들어선 ‘임시정부’를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멘셰비키나 사회혁명당 같은 온건파 사회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레닌을 따르던 볼셰비키도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있던 터였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보았다. 사회발전 법칙을 신봉하던 이 혁명가들은 러시아가 부르주아 혁명 단계에 있으며 자본주의 발전을 거쳐 사회주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 레닌은 ‘레닌당’안에서조차 혼자였다. 그는 열정과 확신을 품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했고 여섯 달 뒤 혁명권력을 거머쥐었다. 남들이 역사법칙에 매달리는 동안 그는 혁명을 창조했다.

느낀 상상 직관을 ‘학습’하라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사고실험’의 대가였다. 사고실험이란 ‘어떤 물리학적인 상황을 구체적인 형체가 있는 것처럼 보고 느끼고 조작하고 관찰하되, 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상상 속에서 자신을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광자’(빛알갱이)라고 생각했다. 광자인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원자료로 삼아 그는 새로운 물리학 원리를 찾아냈다. 복잡한 수식과 논리가 동원됐을 것 같지만 그에게 수학공식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는 머릿속 실험실에서 먼저 통찰했고, 후에 그것을 수식으로 설명했을 뿐이다. 자신을 광자로 만들어낼 정도로 강력한 상상력이야말로 이 탁월한 물리학자가 꽃피운 독창성의 바탕이었다. 상상력은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만큼이나 과학자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의 두뇌는 증명한다.

과학자든 혁명가든 예술가든 모든 뛰어난 창조자는 보통 사람은 따라잡기 어려운 놀라운 상상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의 사고는 특별한 데가 있다. 계시와도 같은 통찰이 난데없는 복병처럼 머리를 급습하기도 하고, 오랜 생각 끝에 하나의 그림이 새벽 지평선의 태양처럼 천천히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의 생리학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역사학자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함께 쓴 <생각의 탄생>은 창조의 순간을 포착해 그 비밀을 알려주려는 책이다. 두 사람이 주목하는 것은 논리나 공식이나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느낌, 상상, 직관이다. 이것들을 찬찬히 살피면 독창적인 생각의 불꽃이 발화하는 순간을 간파할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창조의 계기와 과정을 이해하면 그 능력을 학습을 통해 단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들은 가정한다.

 몸의 기하학적 마술사라고 불리는 필로볼러스 현대무용단. 정형화된 틀에 갇히지 않고 인체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포착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사진 에코의서재 제공
몸의 기하학적 마술사라고 불리는 필로볼러스 현대무용단. 정형화된 틀에 갇히지 않고 인체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포착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사진 에코의서재 제공
학문간 장벽 넘어 ‘통합사고’

이 책은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연장으로 쓰는 ‘생각의 도구’가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들은 ‘생각의 도구’를 유형별로 나눠 모두 열세 가지를 제시한다.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갑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 그것들이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상상력을 구성하는 여러 측면들이다. 지은이들은 과학자, 수학자, 예술가, 사상가들을 끌어들여 이 측면들을 차례로 찬찬히 살핀다. 예를 들어, 형상화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형상화와 관련된 소설가 도로시 캔필드 피셔의 고백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어떤 장면을 강렬한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만일 그 장면을 절대적이고 완전한 이미지로 형상화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이다.”

‘감정이입’은 단순히 감정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타자가 돼 보는 것을 말한다. “문제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야말로 감정이입이다. 그 문제가 사람일수도 있지만 동물일수도 있다. 배우는 극중 인물 속으로 들어가 그 인물이 돼 인생을 자신의 인생으로 만들어야 한다. 소설가는 소설 안에 단순히 인물을 배치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삶을 그대로 반복해 살아야 한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침팬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침팬지의 삶을 산 사람이다. 또다른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동물을 연구할 때마다 그 동물이 됐다. 그 동물처럼 생각하고 또 느끼려 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문제는 곧 내 문제가 됐다.” 심지어 식물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학자도 있다. 옥수수를 연구한 유전학자 베버리 매클린턱은 이렇게 말한다. “옥수수를 연구할 때 나는 그것들의 외부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그 체계의 일부로 존재했다. 나는 염색체 내부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통합적 사고’다. 오늘날의 교육이 학문 간 장벽에 따라 나뉘어 파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창조적 사고의 발육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수학자가 오직 수식 안에서만 생각하고 음악가가 음표 안에서만 생각하고 소설가가 단어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진정한 창조는 있을 수 없다. 프랑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의 말은 이 책의 요약이라고 할 만하다. “모든 과학은 예술에 닿아 있다. 모든 예술에는 과학적 측면이 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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