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진보가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이 진단을 오진으로 여기지는 않으리라.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볼라치면,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다. 그런데 이를 분석한 글을 읽다보면 통탄하기에 이른다. 위기의 본질이 너무 통속적인 탓이다. “진보 개혁세력의 상당수가 민주화 20년간 사회의 주류, 권력의 핵심, 기득권 집단으로 성장해왔지만, 거꾸로 진보개혁의 본래 기치와 가치는 점차 희석돼 가고 있다. 결국 돌아온 것은 이 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광범위한 불신이다.” 신문연재분을 한권의 책으로 엮은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에 나온 말이다. 진보의 기치와 가치가 희석되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신문기자들은 복잡한 사회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데 출중한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민주화의 최대수혜자는 서민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 경력으로 집권하고 고관대작 자리를 차지한 이들과 대자본”이라고 한다. 권력의 맛에 길들고 자본의 편을 드는 꼴을 보고 민중들이 진보에 등을 돌렸다는 말이다. 군사정권에 맞서 싸워서 민간정부를 탄생시키고, 일하는 이들이 사람대접 받도록 애써온 결과가 고작 이 정도라니, 깊은 회의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인가. 현학성 짙은 표현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보란 그저 “그것이 지식이든 돈이든 자기 것을 남과 나눌 줄 아는 것”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철학” 이다. 그런데도 권력을 장악한 진보는 개혁은 고사하고 대자본에 투항했고, 부패로 ‘정통성의 계좌’를 텅 비워버렸다. 이 책이 톺아보고 있는 진보진영의 스펙트럼은 넓다. 기존 정당에 들어간 개혁정치인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그리고 전교조와 시민단체 및 환경단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학도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 두루 살펴보아도 어디 하나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이 없고 일관되게 시민들한테 불신임을 받고 있다. 외려 혁신한 보수가 떠오르고 있으며, 이들의 담론이 자본과 언론의 힘을 빌어 퍼져나가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진보의 초라한 성적표를 까발리는 데 있지 않다. “진보 개혁위기가 서민들의 삶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발품을 판 데 있다. 한마디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며 그만큼 절망의 골이 깊게 패이고 있다. 이는 진보가 다시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386세대의 경우,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잣대로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인식(65%)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이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14%)이었고, 남북관계와 한미관계가 그 뒤를 이었다. 진보가 추구하는 자유는 자본에게 성장할 자유를 부여하는 데 있지 않다. 평등하지 못해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 분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법이다. 진보가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가. 이 책은 조세개혁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이르는 10대 의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전략적으로 노력할 때 진보가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보는 듯싶다. 하나,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으니, 진보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설득하는 것이 더 앞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로자 룩셈부르크가 한 말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진보냐, 야만이냐”라고 할 수 있을 터다. 진보가 위기에 놓이자 야만이 이토록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이권우/도서평론가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진보가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이 진단을 오진으로 여기지는 않으리라.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볼라치면,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다. 그런데 이를 분석한 글을 읽다보면 통탄하기에 이른다. 위기의 본질이 너무 통속적인 탓이다. “진보 개혁세력의 상당수가 민주화 20년간 사회의 주류, 권력의 핵심, 기득권 집단으로 성장해왔지만, 거꾸로 진보개혁의 본래 기치와 가치는 점차 희석돼 가고 있다. 결국 돌아온 것은 이 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광범위한 불신이다.” 신문연재분을 한권의 책으로 엮은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에 나온 말이다. 진보의 기치와 가치가 희석되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신문기자들은 복잡한 사회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데 출중한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민주화의 최대수혜자는 서민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 경력으로 집권하고 고관대작 자리를 차지한 이들과 대자본”이라고 한다. 권력의 맛에 길들고 자본의 편을 드는 꼴을 보고 민중들이 진보에 등을 돌렸다는 말이다. 군사정권에 맞서 싸워서 민간정부를 탄생시키고, 일하는 이들이 사람대접 받도록 애써온 결과가 고작 이 정도라니, 깊은 회의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인가. 현학성 짙은 표현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보란 그저 “그것이 지식이든 돈이든 자기 것을 남과 나눌 줄 아는 것”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철학” 이다. 그런데도 권력을 장악한 진보는 개혁은 고사하고 대자본에 투항했고, 부패로 ‘정통성의 계좌’를 텅 비워버렸다. 이 책이 톺아보고 있는 진보진영의 스펙트럼은 넓다. 기존 정당에 들어간 개혁정치인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그리고 전교조와 시민단체 및 환경단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학도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 두루 살펴보아도 어디 하나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이 없고 일관되게 시민들한테 불신임을 받고 있다. 외려 혁신한 보수가 떠오르고 있으며, 이들의 담론이 자본과 언론의 힘을 빌어 퍼져나가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진보의 초라한 성적표를 까발리는 데 있지 않다. “진보 개혁위기가 서민들의 삶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발품을 판 데 있다. 한마디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며 그만큼 절망의 골이 깊게 패이고 있다. 이는 진보가 다시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386세대의 경우,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잣대로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인식(65%)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이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14%)이었고, 남북관계와 한미관계가 그 뒤를 이었다. 진보가 추구하는 자유는 자본에게 성장할 자유를 부여하는 데 있지 않다. 평등하지 못해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 분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법이다. 진보가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가. 이 책은 조세개혁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이르는 10대 의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전략적으로 노력할 때 진보가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보는 듯싶다. 하나,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으니, 진보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설득하는 것이 더 앞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로자 룩셈부르크가 한 말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진보냐, 야만이냐”라고 할 수 있을 터다. 진보가 위기에 놓이자 야만이 이토록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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