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근대 세계관의 역사-칸트·괴테·니체> <예술가들이 주조한 근대와 현대-미켈란젤로·렘브란트·로댕>게오르크 지멜 지음, 김덕영·배정희 옮김.길 펴냄·각권 1만5000원
독일 현대사회학 창시했지만 베버와 달리 학계 인정 못받아
칸트 ‘양적 개인’ 니체 ‘질적 개인’ 두 철학 모순적 과제 통합
칸트 ‘양적 개인’ 니체 ‘질적 개인’ 두 철학 모순적 과제 통합
<돈의 철학>으로 유명한 독일 사획학자 게오르크 지멜(1856~1918)의 선집 세 권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근대 세계관의 역사-칸트·괴테·니체> <예술가들이 주조한 근대와 현대-미켈란젤로·렘브란트·로댕>이 지멜 연구자인 사회학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의 기획·번역으로 길 출판사에서 나왔다. 길 출판사는 김 교수와 손잡고 짐멜 선집을 10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지멜은 동시대인 막스 베버(1864~1920)와 함께 독일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베버가 당대에 학문의 거장으로 대단한 명성을 누렸음에 반해 지멜은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외곽을 맴돌았다. 철학사에서부터 사생활까지 온갖 분야에 관심을 분산시키는 잡문가라는 냉담한 평가가 학계의 지배적 견해였다. 그는 뒤늦게 재발견된 사람이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에 지멜 연구 바람이 일었고, 그의 사상에 대해 다양한 각도의 탐조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지멜 연구는 아직 풍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덕영 교수는 이 선집 출간으로 지멜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하기를 바란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지멜은 중심에 든 주변인이자 내부 속의 이방인이었다. 독일 수도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의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베를린대학에 들어가 공부한 뒤 그 대학의 강단에 섰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 베를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하고 30년 동안이나 사강사와 원외교수로 떠돌았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에세이풍의 글을 쏟아낸 그는 학계 바깥에서는 인기가 높았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그의 활력 넘치는 교수법에 열광했지만 교수 사회는 그의 ‘이질성’을 용인하지 않았다. 1914년에야 슈트라스부르크대학에 정교수로 자리잡았지만, 1차대전이 터진 상황에서 강의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1918년 간암으로 죽었다.
그가 짤막한 글을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썼다는 것이 학자로서 이름을 얻는 데 장애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번에 번역돼 묶인 글들도 그런 단편적인 글들의 조합이다. 그러나 그런 단편들이 모여 지멜의 관심과 지향과 초점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난다.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은 문화를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지멜을 발견할 수 있는 글모임이고, <예술가들이 주조한 근대와 현대>는 회화와 조각의 거장을 통해 ‘근대성’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특히 <근대 세계관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지멜 저술의 철학적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다.
지멜은 칸트 철학에서 시작해 니체 철학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근대 세계관의 역사>는 그 변화가 단순한 변화에 그치지 않고 두 철학의 지양과 종합을 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칸트나 니체나 사유의 출발은 ‘개인’에 있다. 그러나 두 철학자가 말하는 개인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지멜의 말을 빌리면 칸트의 개인은 ‘양적 개인’이다. 칸트에게 문제가 되는 개인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개인 일반’이다. 근대 세계의 지평 위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존재하는 익명적이고 평균적인 개인이다. 자기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그 기획 속에서 세계와 대면하는 이 개인들은 인격이나 가치에서 동등한 존재다. 칸트는 근대 세계에서 이런 개인들이 보편적으로 발견될 수 있고 발견돼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니체의 개인은 ‘질적 개인’이다. 니체는 익명성과 평균성 속에 함몰된 개인을 견디지 못한다. 그가 발견하는 것은 독특한 개성과 인격을 지닌 초사회적 개인이다. 사회적 관계의 평준화하는 힘을 뚫고 일어서는, 비교 불가능하고 대체 불가능한 유일자가 니체의 개인이다. 이 개인들은 자신의 본질을 향상시키고 고양시키는 것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 지멜은 칸트의 양적 개인주의를 근대 사회의 토대로서 인정함과 동시에 그 토대를 훌쩍 뛰어넘어 독특성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질적 개인을 하나의 이상형으로 제시한다. 평등성과 탁월성 또는 보편성과 독자성이라는 모순적 과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에 미래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막스 베버 / 게오르크 지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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