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안대회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2000원
수차례 낙방 뒤 합격자에게 축하 대신 통렬한 조소 날려
‘호고벽’에 빠진 지은이가 옛글로 되살린 ‘선비다움’
‘호고벽’에 빠진 지은이가 옛글로 되살린 ‘선비다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국립국어연구원이 간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선비’의 뜻풀이다. 줄여 말하면 ‘학식과 덕행을 고루 갖춘 사람’ 정도일 게다.
국문학 교수인 안대회씨는 <선비답게 산다는 것>에서, 이런 뜻풀이에 걸맞게 산 조선시대 인물들의 이러저러한 일화들을 거울 삼아 현세 우리네 삶을 비추어본다. 스스로 ‘호고벽(好古癖)’에 빠진 사람으로 자평하는 지은이가 옛글을 읽다가 발견한 선비들 특유의 모습과 흥미로운 사유의 자취를 모아 엮었다.
안빈낙도, 풍류, 고루한 백면서생 따위의 인상은 선비들의 지극히 피상적인 모습일 뿐이다. 진짜 선비들은 ‘선비다움’을 지키기 위해 엄정한 수양과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조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또 그들이 꼼꼼하게 남긴 여러 분야의 구체적 기록들은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생활사 자료로 손색이 없다. 18세기 문인 유만주가 21살때부터 쓰기 시작해 34살에 요절하기까지 13년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은 <흠영>이란 일기가 대표적이다. 일기에는 그의 독서 경험과 사유의 기록은 물론이고, 조정에서 벌어진 논쟁, 통행금지와 금주령, 제사 음식, 처방약, 서책, 물가, 날씨, 심지어 잠잔 곳과 옷을 갈아입은 때까지도 상세히 기록했다. 16세기 문장가 어숙권은 명나라의 <명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조선 역사가 왜곡 기술된 것을 바로 잡는데(선조 17년1569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김려(1766~1821)는 방대한 분량의 야사를 한데 모아 <창가루외사> 120권과 <한고관외사>140권의 총서를 편찬했다.
조선 후기의 박학 이덕무는 이이의 <성학집요>, 허준의 <동의보감>,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학자 필독서로 꼽았으되, 이 책의 지은이는 이택환의 <택리지>, 홍만중의 <소화시평>, 전래소설 <춘향전>이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기교양서로 추측했다. 그러나 당대의 선비들은 지식에 앞서 학문하는 자세를 중시했다. 퇴계 이황은 그 대표적 인물이다. 퇴계의 삶과 학문은 스승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마음에 새긴 제자들이 펴낸 <퇴계선생언행록>에 고스란히 남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명예와 재물 대신 학문과 예술을 사랑했다. 문인화가 이하곤은 장서가로도 이름이 났는데, 그의 개인서재 ‘완위각’에는 무려1만권이 넘는 양질의 도서가 소장돼 ‘만권루’라고도 불렸다. 또 영조때 선비인 김광수는 수많은 고서화와 서적, 골동품을 수집하고 품평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러나 옛 선비들의 멋과 여유, 고뇌까지도 신분제 사회의 특혜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바탕한 측면이 크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당대의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의식을 지키고 실천한다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초야에 묻히지 않고 관직에 나가서도 올곧은 선비정신을 지켜가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 양반들에게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은 ‘당위’에 가까웠다. 그래서 선비들의 과거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지금의 대입시험에 못지 않았던 것 같다. 연암 박지원도 수 차례 과거에 낙방한 끝에 다시는 응시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면서 합격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어제 과거 응시자가 수만 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는데, 방에 이름이 오른 사람이 겨우 20명에 지나지 않으니 … 시험장 문에 들어가느라 밟고 넘어져 죽고 부상한 자가 무수하지요. 저는 ‘만에 하나’의 영광을 축하할 마음은 없지만 ‘열에 아홉’은 저승에 갈 위험한 시험장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도 된 것만은 축하합니다.” 축하서신치곤 꽤나 냉소적인데, 합격자에 대한 질시라기보다 출세를 위한 과거에 목매는 사대부들에 대한 통렬한 조소에 가깝다.
박지원과 동시대 문인인 신광하는 과거일에 비가 오면 시험장이 아수라장이 될 터이니 아예 들어가지 말자고 외사촌과 약속했다. 그런데 실제로 비가 오자, 모든 미련을 털고 홀연히 금강산 여행길에 올랐다. 선인과 범인의 갈림길이었을 터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박지원과 동시대 문인인 신광하는 과거일에 비가 오면 시험장이 아수라장이 될 터이니 아예 들어가지 말자고 외사촌과 약속했다. 그런데 실제로 비가 오자, 모든 미련을 털고 홀연히 금강산 여행길에 올랐다. 선인과 범인의 갈림길이었을 터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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