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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검은 급진파’ 제3세계 해방의 물꼬를 트다

등록 2007-02-01 19:51

<블랙 자코뱅> 시 엘 아르 제임스 지음. 우태정 옮김.필맥 펴냄. 1만6000원
<블랙 자코뱅> 시 엘 아르 제임스 지음. 우태정 옮김.필맥 펴냄. 1만6000원
프랑스혁명에 자극 받아 세계 최초 ‘노예혁명’ 일으키고
흑인공화국 ‘아이티’ 세우게 한 투생 루베르튀르의 투쟁사
아이티는 전라도보다 약간 넓은 서인도 제도의 조그만 나라다. 지도를 놓고 보면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섬의 서쪽 1/3이 아이티 공화국이다. 동쪽 2/3는 도미니카공화국이다. 지리상 위치도 갸웃거릴 관심밖의 나라에서 전해오는 근자의 소식이라곤 내분, 쿠데타, 최빈국 따위의 나쁜 뉴스가 거개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세계 최초로 노예혁명으로 세운 흑인공화국이라는 빛나는 독립운동사를 지니고 있다. 1804년 이전은 프랑스 식민지 산도밍고였다. 국기에는 이러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프랑스혁명에 자극 받아 불붙은 노예혁명의 경과를 보여주듯 국기는 프랑스 삼색기를 닮았다. 결정적 장면은 가운뎃줄에 백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상징으로도 백인을 쫓아버렸다. 원래 삼색기의 백색은 평등의 백색이니 백색으로선 억울한 처사가 아니겠냐만. 그 자리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문장과 ‘단결은 힘’이라는 문구가 들어찼다. 민족주의가 성했을 때는 윗줄 파란색이 흑인을 뜻하는 검은색으로 바뀌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파란색이다.

이제 아이티 혁명의 역사에서 <블랙 자코뱅>이란 책 제목을 해독했을 법하다. 자코뱅은 프랑스혁명 당시 과격 공화주의 당원을 뜻한다. ‘블랙 자코뱅’을 직역하면 ‘검은 급진파’, 스스로 사슬을 끊어낸 산도밍고의 흑인노예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다름아닌 아프리카에서 나포돼 온 노예들. 이들이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에 항거해 대대적으로 행동으로 옮긴 이야기는 1938년 출간 당시 제3세계 해방운동의 도화선이 될 정도로 깜짝 놀랄 저작이었다. 제국의 역사는 이 사건을 아무도 주목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노예무역의 잔혹한 역사마저 누그러뜨려가던 시점이었다. 물꼬를 되돌린 이 ‘역사소설’은 저자의 이력이 ‘자코뱅’스럽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출생지는 영국령 트리니다드토바고,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시스트, 정치적으로는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을 이끄는 반제국주의자라는. 이야기의 한 축으로 아이티 노예혁명의 주역인 투생 루베르튀르를 세계사로 끌어낸다. 45살까지 노예였던 그를 나폴레옹에 비견될 탁월한 전략가로 말이다.

투생 루베르튀르
투생 루베르튀르
때는 18세기, 산도밍고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농업으로 식민지경제의 호황을 누리던 터였다. 식민본국의 부의 원천이 된 산도밍고는 ‘앤틸리스 제도의 진주’라 불렸다. 그건 백인들의 호주머니를 불렸다는 것이지 흑인과는 무관한 부였다. (흑인독립국이어서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는 손가락질은 가당찮다.) 호황에 비례해 고된 노동을 떠받칠 아프리카 노예들이 우리같은 짐칸에 손발이 결박된 채 차곡차곡 쟁여져 ‘수입’됐다. 그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노예들을 짐승처럼 덫으로 잡아서 우리에 넣어 운반하고, 당나귀나 말과 나란히 세워 부리고, 짐승을 때린 막대기로 두들겨 패고 마구간에 처넣고” 하는 데 더해 노예주의 기분에 따라 “노예를 목까지 파묻고는 머리에 설탕을 발라 파리떼가 꼬여 머리통을 파먹게 했”다. 극악무도한 노역 뿐아니라 아주 짧은 기간에 이뤄진 인종혼합도 불안을 가중시켰다. 1789년 ‘자유, 평등, 우애’의 기치를 내건 프랑스혁명이 바다 건너 산도밍고까지 뒤흔들었다. 빅 화이트, 스몰 화이트와 혼혈인 물라토간의 정치적 갈등이 증가한 틈에 노예반란이 일어났다. 한달새 4만명이 가담하며 세를 불려갔다. 구심점에는 확신에 찬 강력한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가 있었다.

투생의 할아버지는 아프리카의 부족장이었다. 총명했던 그는 주인의 마차꾼으로 발탁되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천부의 인권인 자유는 자기 자신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권리이다.” 노예혁명을 부르짖은 책을 접한 그는 “이제 필요한 것은 용감한 지도자뿐”이라는 대목을 읽고 또 읽었다. 투생의 군대는 현지 백인, 프랑스 군대, 스페인 침략군, 대규모 영국 원정대와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이 보낸 원정대를 차례로 물리쳤다. 투생은 프랑스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1791년부터 1803년까지 12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1804년 1월 투생의 후계자인 데살린이 아이티의 독립을 선언했다. 노예혁명으론 유일무이하게 성공한 혁명이었다.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확보한 노예들인 블랙 자코뱅들은 노예제도 전체를 용해시킨 가장 강력한 용매였다.” 아이티가 독립한 지 3년만에 영국은 노예무역을 접었다. 1세기 지나 쿠바혁명도 촉발시켰다. 200년이 지난 지금 내란, 미국 개입, 독재 등으로 빈사 상태에 빠진 아이티 공화국의 희망을 혁명 정신에서 찾을 수 있을까.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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