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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하나뿐인 진리란 없다

등록 2007-02-01 14:47수정 2007-02-01 19:54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니컬러스 로일 지음·오문석 옮김, 앨피 펴냄·1만2500원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니컬러스 로일 지음·오문석 옮김, 앨피 펴냄·1만2500원
자기동일성이란 애초에 없다는 철학자 데리다의 주제를
‘해체’ ‘차연’ ‘흔적’ 등 그의 용어들을 통해 설명
2004년 타계한 자크 데리다는 1930년 알제리에서 유대계 후손으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활동한 철학자다. 이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명료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나의 뿌리,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렴할 수 없는 모호하고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이 이미 그 안에 들어 있다. 확정적이고 고정된 자기동일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데리다가 자신의 존재에서 확인하고 70권에 이르는 저작에서 무수히 되풀이한 주제였다.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근거, 단 하나의 중심, 단 하나의 원천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그는 ‘해체’ ‘차연’ ‘흔적’ ‘산포’ 같은 수많은 용어로 설명하려 했다.

니컬러스 로일(영국 서섹스대학 영문학 교수)이 쓴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은 데리다라는 철학자가 만들어낸 유령들, 다시 말해 데리다의 서명이 들어간 용어들을 그의 사상 속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유령이란 붙잡기 어려운 것이고 난데없이 출몰하는 섬뜩한 어떤 것이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이 유령이다. 데리다는 의도적으로 유령을 불러내 세상을 어지럽히려 한다. 단단한 지반 위에 튼튼하게 지어올린 건축물이라고 여겼던 모든 사상, 세계관, 형이상학, 나아가 세계 그 자체가 사실은 그리 단단한 것도 튼튼한 것도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이를테면, 1967년 그가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라는 세 권의 저서를 거의 동시에 폭탄처럼 세상에 내던졌을 때 이 유령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지식세계는 이제 어떻게든 이 유령들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로일의 이 책 또한 그런 싸움의 하나다.

데리다의 유령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해체’(de-construction)라는 유령일 것이다. 데리다의 다른 용어들처럼 이 말도 그가 새로 만들어낸 말이다. 해체란 구조(construction)를 분해(de-)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건물을 부수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하나의 구조로 이해되는 언어적 구성물, 곧 텍스트를 면밀히 살펴 그 내부의 자기모순, 자기배반을 드러냄으로써 그 구조물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해체의 전략이다. 어떤 구조물도, 어떤 텍스트도 내적 모순이 없는 것이 없고 따라서 해체를 피해갈 수 없다. 애초에 자기 완결적 구조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구조가 없다면 그 구조를 구조로 만들어주고 지탱해주는 중심도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데리다에게 핵심 관념이 하나 있다면 ‘어떤 중심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심이 없으므로 주체 중심주의나 이성 중심주의 같은 모든 형태의 중심주의도 토대 없이세워진 것일 수밖에 없다.

데리다의 명제 중에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명제만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도 없다. 이 명제는 텍스트 바깥에서 텍스트를 설명해주는 사상적 구조물을 찾아선 안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바꿔 말하면, 텍스트는 자기 완결적이지 않고 언제나 열려 있으며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데리다는 자신의 명제가 불러일으킨 오해를 풀어보려고 뒷날 그 ‘텍스트 명제’를 ‘컨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로 바꿨다. 지은이는 그 명제를 더 줄여 ‘컨텍스트밖에 아무것도 없다’라고 표현한다. 모든 텍스트는 자기 완결적이지 않고 열려 있으므로 컨텍스트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새 명제에 담겨 있다. 그러나 데리다에게는 그 컨텍스트조차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것이다. “어떤 의미도 컨텍스트 바깥에서는 결정될 수 없지만, 어떤 컨텍스트도 (그 의미를) 충족시킬 수 없다.” 모든 규정은 다만 잠정적이고 보완적인 것일 뿐 영원하고도 완전한 규정은 없는 것이다. 데리다는 삶이, 세상이, 역사가 그렇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고정된 중심에 들어앉아 오직 하나뿐인 진리를 호령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진리도 없고 그런 중심도 없다고 데리다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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