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양휘웅 옮김. 이산 펴냄. 2만2000원
“하늘에 올라가 하늘의 아버지와 형을 만나 세상의 요괴를 몰아내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홍수전이 첫 과거시험을 치르러 광저우에 갔을 때 중국인 침례교 개종자 량아파가 쓴 ‘권세양언’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 뒤 꾼 꿈의 내용이다.
그는 1843년 네번째 과거에 낙방한 후 꿈에 본 노인과 젊은이가 하느님과 예수이며 자신은 하느님의 중국인 아들이자 예수의 친동생이라고 확신한다. 이후 하느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지상낙원 건설에 매진한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요괴’로 규정하고 지상낙원을 약속하는 그의 설교는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던 재야지식인 소작농 노동자 비적떼 천민을 매료시킨다. 이들은 홍수전이 만든 종교조직 배상제회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1851년 태평천국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홍수전은 태평천국의 천왕이 됐다.
저자 조너선 스펜스는 책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천년왕국 신앙이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 중국 전통과 그리스도교의 갈등, 당시 서양인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태평천국과 그 지도자들, 그리고 홍수전의 성서 해석에 많은 관심을 둔다.
홍수전과 지도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동안 자신의 왕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는가? 저자는 홍수전이 성서를 통해 힘 영감 사명감을 얻었지만, 종교의 감화가 아니라 애매함, 착오, 예상치 못한 모순 투성이의 제멋대로된 번역의 결과라고 본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