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시(BBC) 구하기
그렉 다이크 지음. 김유신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2만5000원
그렉 다이크 지음. 김유신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2만5000원
잠깐독서
“나는 비비시(BBC)에서 해임되자 그 주말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만일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친구들이나 가족이 모두 미쳐버릴 것이라고 친구가 말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책을 쓰는 동안 내가 가족을 미치게 만들어버렸다.”
‘인사이드 스토리’란 부제처럼 책은 2004년 1월말 영국은 물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정치스캔들 ‘길리건 사건’의 주인공, 당시 국영방송 비비시 사장 그렉 다이크가 해임 직전 사흘간의 막전막후를 중심으로 쓴 자전적 회고록이다. 그는 “책이 스캔들을 들춰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만족할 것”이라고 했지만, 560쪽의 방대한 분량에는 스캔들만이 아니라 입지전적인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일대기가 모두 담겨 있다.
‘길리건 사건’은 2003년 5월 비비시의 국방부 취재기자 앤드루 길리건이 ‘블레어 정부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에 대한 정보를 윤색해 이라크 참전의 명분으로 이용했다’고 보도하면서 비롯됐다. 정부가 ‘오보’라며 기자와 비비시를 비난하면서 전례없는 ‘진실게임’으로 번진 사건은 8개월 뒤 일방적으로 정부 편을 든 ‘허튼 보고서’의 발표됨으로써 그와 당시 비비시 회장이 물러나는 사태를 빚었다. 그러나 불과 1주일 뒤 문제의 보고서가 총리실의 또다른 정보 조작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일약 ‘권력에 맞선 공영방송의 수호자’로 부상했다. 당시 그의 해임에 반발해 수천명의 비비시 직원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고, 지지자들이 돈을 모아 일간신문에 항의 광고까지 내는 과정은 마치 1975년 <동아일보> 기자 해직사태와 백지광고운동을 떠올려 우리 언론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명성으로 2004년 10월 한국을 초청방문해 그가 남긴 얘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의 영향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 공영방송의 현실에 다시금 시사점을 던져줬다. “공영방송은 정부나 특정 정당의 대변인이 돼서는 안되며, 정치세력이 제시한 정책을 초대한 공정하고 정직하게 보도해야 한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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