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통일문화재단 창립 10돌을 기념해 `한반도 갈등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2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2006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답변
독일은 군사적으로 통일한 나라가 아니다. 햇볕정책은 군사적으로 통일하지 말자는 뜻으로 시작됐다. 다만, 북한의 변화에 대해 실제적 변화와 해석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서동만 교수는 미국과 국민에 북한의 변화를 중계방식 하는 방식으로 하면 갈등이 완화되지 않겠냐고 했다. 류길재 교수의 질문(북한이 중국과 베트남 벤치마킹했다고 말하는 근거)에 답하겠다. 소련의 경우 정치변화 먼저 일어나고 경제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과 베트남은 경제-사회·문화-정치-군사 변화가 진행됐고, 이는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북한의 특구 중심의 시장개방과 경제 변화는 중국과 베트남 방식이다. 소련이나 동유럽의 경우 공산당 해체로 급격한 변화가 있었지만 중국과 북한은 공산당이나 노동당이 집권한 상태에서 개혁개방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벤치마킹의 근거다. 최근 북한은 경제연수단뿐만 아니라 법무연수단도 출국하고 있다. 경제-정치 분야의 성공사례를 배우러 가는 것이다.
90년대 포용정책을 했더라면 남북관계나 북핵문제도 해결됐을 것이라고 한 것은, 당시 북한이나 국제정세, 국민여론이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정부가 식견이나 리더십을 갖고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당시 위기에 봉착했던 북한의 내부상황을 보고 국제사회로 끌어내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북한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당시 정부는 이런 면에서 리더십과 식견이 충분치 못했다.
햇볕정책을 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한 적이 없으며, 그런 식으로 목적을 내걸지도 않았다. 북한의 대남 무력사용을 묵과하지 않겠다, 흡수통일 않겠다, 긴장관계를 완화하겠다고 내걸었으며, 화해·협력 그 자체가 과정이면서 목표였다. 단 한반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통일까지 갈 수도 있다고 시작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노 대통령이 의지가 좀 없다고 본다. 때가 맞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응이 있어야 하는데, 북핵문제가 너무 꼬여있지 않느냐, 우리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느냐 등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 소극적이었다. 평화단계는 나중의 목표로 하고,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미사일 발사 유예를 당면 목표로 삼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가야 한다. 강한 의지를 대통령이 보여주면 실무자들은 움직일 수 있다.
대북지원 물자들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보여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 아니다. 하지만 먹는 장면, 입으로 숟가락이 들어가는 것까지 사진을 찍어 보여줄 수 없는 것 아니냐.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커 북한의 열등의식이 크다. 북한이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도 이해해야 하지 않나.
이동복 “8·15 행사는 북한 통일전선에 말려든 꼴” 서동만 교수는 제 발제문이 과거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는데, 현재를 놓고 고찰한 것이다. 70~80년대 운동권이 모두 뉴레프트됐다고 했는데, 참신한 말이다. 뉴라이트는 지금 뉴레프트 나오라고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남북 문제를 민족 내부 이론 차원에서 보면 옥동자가 탄생하기 어렵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배치된다고 하기도 하는데, 제2조를 보면 정부참칭과 대한민국 전복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2조에서 정부참칭 빼고 대한민국 전복만 두면 된다. 북한의 변화를 얘기할 때 6.15, 8.15 행사를 성과로 보기도 하는데, 이 행사야말로 북한의 상층 통일전선에 말려든 전형적인 케이스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려면 김정일 정권이 끝나야 한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잘은 모르겠지만… 단서 하에) 정부 때 북한은 상층 통일전선 개념으로 대화를 했고, 우리는 그것을 깨려고 했다. 그래서 남북대화에 우여곡절이 생겼고, 북한이 상층 통일전선으로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에 남북대화가 깨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북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북한의 상층 통일전선 개념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정리=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이동복 “8·15 행사는 북한 통일전선에 말려든 꼴” 서동만 교수는 제 발제문이 과거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는데, 현재를 놓고 고찰한 것이다. 70~80년대 운동권이 모두 뉴레프트됐다고 했는데, 참신한 말이다. 뉴라이트는 지금 뉴레프트 나오라고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남북 문제를 민족 내부 이론 차원에서 보면 옥동자가 탄생하기 어렵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배치된다고 하기도 하는데, 제2조를 보면 정부참칭과 대한민국 전복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2조에서 정부참칭 빼고 대한민국 전복만 두면 된다. 북한의 변화를 얘기할 때 6.15, 8.15 행사를 성과로 보기도 하는데, 이 행사야말로 북한의 상층 통일전선에 말려든 전형적인 케이스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려면 김정일 정권이 끝나야 한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잘은 모르겠지만… 단서 하에) 정부 때 북한은 상층 통일전선 개념으로 대화를 했고, 우리는 그것을 깨려고 했다. 그래서 남북대화에 우여곡절이 생겼고, 북한이 상층 통일전선으로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에 남북대화가 깨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북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북한의 상층 통일전선 개념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정리=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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